항목 ID | GC042002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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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歷代山長有司錄 |
영어음역 | Yeokdae Sanjang Yusarok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근대 |
집필자 | 김동철 |
[정의]
1839년부터 1930년까지 동래 반송 삼절사의 봉안제 때 산장과 유사 등을 역임한 인물의 명부.
[개설]
삼절사는 임진왜란 때 순절한 남원 양씨 일문(一門) 삼절(三節), 즉 양지(梁誌), 양조한(梁潮漢), 양통한(梁通漢) 세 분을 모시는 사우(祠宇)이다. 삼절사는 동래부 사림의 제의로 1839년(헌종 5)에 지금의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송동에 건립되었다. 다음 해 사림의 요청으로 경상 감사가 상계하여 일문 삼절의 합사를 중앙 정부로부터 허락받았다. 제수 등 제반 비용은 동래부에서 제공하였다. 관리와 행사(行祀)는 향내 사림이 주관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역대 산장 유사록(歷代山長有司錄)』은 삼절사에서 춘추(春秋)를 지내는 봉안제(奉安祭) 때, 이를 주관한 산장(山長)[서원의 책임자]이나 유사(有司)[단체 또는 자생적 모임에서 사무를 맡아보는 직책으로, 흔히 ‘소임(所任)’이라고도 함] 등 임원의 이름과 직임을 기록하기 위하여 편찬한 것이다.
[형태/서지]
『역대 산장 유사록』 원본은 삼절사에 소장되어 있다. 삼절사에서 1990년 발행한 『삼절사 중건지(三節祠重建誌)』에 활자화되어 수록되었다.
[구성/내용]
1810년(순조 10) 2월 수비(修備)한 이후 29년 동안은 중단되어 ‘미상(未詳)’이라고 적고 있으며, 1839년 9월 17일 봉안제부터 기록되어 있다. 초헌관은 문도빈(文道彬), 아헌관 문병헌(文秉憲), 종헌관 김영(金泳) 등이다. 1840년 초헌관은 문병헌이고, 직임은 산장이다. 이때부터 산장으로 표기되어 있다. 산장은 삼절사의 대표자를 가리킨다. 1841년 봄 봉안제부터 산장과 유사[接有司, 祠有司] 등으로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 1930년 봄 산장 박명찬, 향유사 곽영모가 마지막이다. 제사는 매년 봄·가을 두 차례 열렸다. 명단도 이에 따라 등재되어 있으나, 일부 누락된 부분도 있다. 1842년 봄 제사부터 유사는 양씨 문중에서 대부분 담당하였음을 볼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역대 산장 유사록』은 19세기 전반에서 20세기 전반[1839~1932]까지 근 100년 동안의 삼절사와 관련된 인물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산장을 역임한 인물이나 유사를 역임한 남원 양씨 등을 통해서 동래 지역 향반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