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2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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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相休永世不忘碑 |
영어의미역 | Memorial Stone for Honoring Kim Sanghyu |
이칭/별칭 | 순상국 김공 휘 상휴 영세불망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부산광역시 강서구 명지동 명지파출소 앞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상기 |
[정의]
부산광역시 강서구 명지동에 있는 조선 후기 경상도 관찰사 김상휴(金相休)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건립 경위]
염민(鹽民)들에게 선정을 베푼 경상도 관찰사 김상휴의 공에 보답하고자 1824년 2월 염민들이 세운 비이다. 또한 비석의 뒷면에는 당시 명지 염민들의 상황을 알리기 위하여 김상휴의 선정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위치]
김상휴 영세불망비(金相休永世不忘碑)는 본래 부산광역시 강서구 명지동 명지초등학교 앞에 있었으나 현재는 명지파출소 앞으로 옮겨져 있다.
[형태]
비석의 갓머리는 화강암이고, 비신(碑身)은 오석(烏石)이다.
[금석문]
비의 제목은 ‘순상국 김공 휘 상휴 영세불망비(巡相國金公諱相休永世不忘碑)’이며, “풍속을 살피어 덕화(德化)를 베푸시니/ 그 은혜 염민(鹽民)들에게 두루 미치었네/ 한 번에 고달픈 폐막을 없애 주시니/ 백성들 이제야 다시 살았네[觀俗宣化 遍及鹽民 一袪苦瘼 百姓其蘇]”라고 적혀 있다.
비의 뒷면에는 ‘본 섬의 폐단을 구제하는 조목’이라 하여 “대개 염정(鹽丁)에게 함부로 잡역을 부과하는 것은 오로지 소임 염민(所任鹽民)에게서 비롯된다. 그래서 소임은 영원히 혁파하노라. 당초 소임의 폐단은 또한 산창(蒜倉)의 감색(監色)에게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감색에게는 별도로 찰칙(察飭)을 더하여, 이후로 경비의 지출은 하나같이 새로 판각한 절목(節目)에 따라 수염민(首鹽民)이 거행토록 한다.
또한 금송(禁松)을 적간(摘奸)하는 자가 섬 안으로 들어가지 말라는 것은 계유년의 계하 절목(啓下節目)에 이미 있고, 조선(漕船)과 공선(公船)의 사공과 각 군청(軍廳)의 장무(掌務)와 어금군(御禁軍)의 선발에 염민을 침범하지 말라는 것은 기묘년 절목에 있고, 주사군(舟師軍)들이 섬사람을 침범하지 말 것과 강변 각 읍에서 염선을 붙잡는 병폐에 대해서는 매해 보내는 관칙(關飭)과 전후의 제절(題節)에 마련되어 있다. 이에 모두 잘못을 바로잡아 길이 바꾸었으므로 이에 비석에 새겨 두노라. 도광 4년 갑신년[1824] 2월 세움[本島捄弊條目 盖鹽丁之濫雜 專由於所任鹽民 故所任則永爲革罷 當初所任之弊 亦由於蒜倉監色 故使監色 另加察飭 而自後應下 則一從新板刻節目 以首鹽民擧行 且禁松摘奸之勿入島中 旣有癸酉啓下節目 漕船與公船沙工及各軍廳掌務與御禁軍之勿侵鹽民 又有己卯節目 舟師軍之勿侵島民及沿江各邑執船弊之每歲關飭 又有前後題節 而至乃咸使矯捄而永遷 故爰刻于石 道光四年甲申二月 日 立]”이라고 적혀 있다.
[현황]
명지 염전에 관한 유일한 역사적 자료이나, 비바람을 막는 시설 없이 노천에 방치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