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225 |
---|---|
한자 | 繪本太閤記釜山鎭城 |
영어음역 | Busanjinseong Fortressin Hoebontaehapgi |
영어의미역 | Biography of Hideyoshi Toyotomi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성훈 |
[정의]
조선 후기 저술된 일본 소설 『회본 태합기』에 삽입되어 있는 부산진성 전투가 묘사된 그림.
[개설]
『회본 태합기』는 1797~1802년에 일본에서 편찬한 소설로, 삽도(揷圖)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 글을 쓴 다케우치 가쿠사이[武内確齋][1770~1827]는 에도 시대 후기에 활동한 오사카[大阪] 출신의 극작가이자 시인이다. 삽화를 그린 오카다 교쿠잔[岡田玉山][1737~1812]은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우키요에[浮世繪] 화가이다. 『회본 태합기(繪本太閤記)』 「부산진성(釜山鎭城)」은 임진왜란 때 부산의 조선군이 일본군과 격전을 벌이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이다. 현재 국립진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형태 및 구성]
『회본 태합기』는 1797년에 초편(初篇)이 간행되었다. 초편이 큰 인기를 얻자 이후 후편이 계속 제작되었고, 결국 1802년까지 총 7편 74책이 간행되었다. 제1편에서 5편까지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1537~1598]의 일본 통일을, 제6~7편에는 주로 일본의 조선 정벌 내용을 다루었다. 『회본 태합기』 「부산진성」은 『회본 태합기』 제6편 제3권에 수록되어 있는데, 임진왜란 당시 정발(鄭撥)[1553~1592]을 필두로 한 조선군이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1600]가 이끄는 일본군과 격전을 벌이는 모습을 도해한 것이다. 먼저 화면의 2/3 이상을 차지하는 공간에 부산진성이 묘사되어 있다.
성 안쪽에는 성곽 및 성문 위 누각에서 화살을 쏘며 일본군의 진격을 방어하고 있는 조선군의 모습이, 성 바깥쪽에는 각종 무기 및 깃발을 들고 성문 안으로 돌격해 들어가는 일본군의 모습이 그려졌다. 한편 『회본 태합기』 「부산진성」에는 각종 나무가 성벽 안팎의 건물 및 절벽 사이에 빽빽이 들어서 있고 성의 위아래에 구름이 짙게 깔려 있는 등 부산진성의 주변 모습이 자세하게 표현되었다.
[특징]
『회본 태합기』는 임진왜란이 발발한 지 200년이 지난 무렵 일본에서 간행된 책이다. 책 속 주요 이야기들은 대부분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고 있지만, 삽화 속 장면들은 대개 작가에 의해 새롭게 고안된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이 점은 임진왜란 관련 장면에서 명확하게 확인된다. 『회본 태합기』 「부산진성」에서 이 점을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부산진성 그림에서 성은 조선식이 아닌 일본식으로 축조된 것이며, 성 내 건물들은 모두 일본식 기와집들이다. 당시 부산진성은 바다와 바로 인접한 곳에 위치했음에도 성은 산속 깊은 곳에 있는 것처럼 묘사되었다. 병사들의 복장, 무기 등도 모두 임진왜란 당시의 것과는 다르게 그려졌다.
화가는 『회본 태합기』 「부산진성」에서 역사적 고증으로 부산진성 전투를 사실적으로 재현하기보다는 전투의 극적인 측면을 표현하는 데 주력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즉, 화가는 빽빽이 들어선 나무, 높은 성벽, 구름 등을 통해 부산진성이 산세가 매우 험한 곳에 자리했던 요새임을 암시하고자 했다. 또한 조선군 병사가 성문 위 누각으로 급히 달려가는 장면이나 일본군 병사들이 막 성문 안으로 진격해 들어가는 장면을 통해 일본군이 부산진성을 함락시키기 바로 직전의 긴박한 상황을 표현하고자 했다.
[의의와 평가]
『회본 태합기』에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과 일본 간에 벌어졌던 여러 전투 및 사건을 도해한 삽도가 많이 수록되어 있다. 『회본 태합기』 「부산진성」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 삽도들은 치밀한 고증을 통해 당시 전투 및 사건을 재현한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당시 전투 및 사건의 극적인 상황이 상당히 잘 구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