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155 |
---|---|
한자 | 漂倭入送回謝謄錄 |
영어의미역 | Record of Pyowae Ipsonghoesa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상규 2 |
[정의]
조선 후기 동래부를 중심으로 한 표류 일본인에 관한 기록.
[편찬/간행 경위]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된 표류민 관계 등록을 비교해 보면 예조 전객사에서 편성 의도를 달리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의도 자체가 분명한 것이라고 하기보다는 표류 관계 일지나 문서 등을 엮으면서 생겨난 외형적 특성으로도 보인다. 이 자료는 조선 해역에 표착한 일본인들을 송환해 주고 나중에 쓰시마 번에서 송환해 준 것을 감사하게 여기는 응답 서계를 보내온 것까지 기록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표류민 송환에 관련하여 왜관의 동정을 기록하는 방식은 다른 표류민 관계 등록과 대동소이하다.
[형태/서지]
『표왜입송회사 등록(漂倭入送回謝謄錄)』은 1책 188장으로 되어 있고, 책의 크기는 세로 41㎝, 가로 26.4㎝이다.
[구성/내용]
『표왜입송회사 등록』에는 책 제목 그대로 일본 배가 표착하여 본국으로 돌아간 다음 회례하는 서계까지 전 과정이 실려 있다. 이 책의 편성 주체는 표류민 송환의 과정을 외교적 의례로서 기록했음을 알 수 있다. 일본 배가 경상좌·우도에 표착했을 경우 현지에서 간단한 조사를 받은 뒤에 경상우도에 표착한 일본 배는 다대포(多大浦)로 인도되었다가 동래 우암포로 옮겨졌다. 여기서 훈도·별차가 자세한 표류 경위를 조사하였다.
경상좌도에 표착했을 때는 현지에서 간단한 조사를 받은 뒤 표류민은 우암포로 옮겨 온다. 일본 표류민의 거주지가 쓰시마 번이면 왜관으로 인도되었고, 쓰시마 이외로 밝혀지면 동래부 별차(別差)가 출장하여 상세한 조사를 한 뒤에 현지에서 일본으로 송환하였다. 표류 횟수가 많았던 경상우도는 통영[후에 옥포로 이동]에 배치된 왜학이 표류민 조사를 담당하였다. 쓰시마 번 거주민이 아니라 하더라도 동래부에서 왜관에 통보하였으며, 경우에 따라 왜관의 인원이 훈도·별차의 동행 하에 육로로 우암포로 와서 조사를 하는 예도 있었다.
[의의와 평가]
표류민과 관련하여 조선·일본 간 표류민 연표가 만들어지는 등 연구 업적이 축적되어 있다. 그러나 지방 군현이 일본 표류민을 구호하고 연안민들이 일본 표류민 응대를 위한 역에 동원되는 문제는 심도 있게 검토되지 못하고 있다. 표착지의 백성들이 담당했던 현물은 노동역으로 대체되었다고 밝혀질 뿐이다. 표류민 응대와 관련하여 지방 군현 또는 수영이 관여된 측면을 밝히는 데 『표왜입송회사 등록』이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규장각 소장 표류민 관계 등록을 종합한 다음 일본 쪽 자료와 대조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