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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하차왜 등록』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0120
한자 陳賀差倭謄錄
영어의미역 Record of Jinhachawae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홍성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도서
편자 예조
권책 1책[95장]
규격 40×26㎝
편찬 시기/일시 1650~1725년연표보기 - 작성
소장처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599

[정의]

조선 후기 조선 국왕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부산 왜관에 파견된 일본 대마번의 외교 사절에 대한 기록.

[편찬/간행 경위]

조선 후기 임진왜란으로 단절된 일본과의 외교가 재개된 뒤에 무역량의 증대를 위해 대마번에서는 각종 명목으로 임시 사절인 차왜를 파견하였는데, 진하차왜는 조선 국왕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파견된 차왜를 말한다. 예조 참의에게 보내는 서계를 지참하였으며 중앙 정부에서 파견한 경접위관이 접대하였다. 정관·도선주·봉진압물 각 1명, 시봉 2명, 반종 16명, 격왜 70명으로 이루어졌으며, 70일 동안 왜관에 머물러 있을 수 있었다. 『진하차왜 등록(陳賀差倭謄錄)』은 이러한 정황을 기록한 것이며 편찬은 예조 전객사에서 하였다.

[형태/서지]

1책 95장의 필사본으로, 크기는 40×26㎝이다.

[구성/내용]

『진하차왜 등록』은 1650~1725년에 조선 후기 국왕 5명[효종·현종·숙종·경종·영조]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대마번이 파견한 외교 사절에 관한 기록이다. 1650년 3월 효종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부산 왜관에 온 평성윤(平成倫), 4월 등지승(藤智繩)이 시초이다. 이들이 지참한 외교 문서[서계]가 예조 참의 앞으로 보낸 것이었기 때문에 향접위관의 접대를 받아야 했으나, 일본 관백[최고 통치자]의 명령을 받고 왔다 하여 경접위관의 접대를 받았다.

1693년 이후 진하차왜의 구성원 중 시봉 1명, 반종 2명, 격왜 20명에 대해서는 접대를 허락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국왕의 사망을 조위하기 위해 파견된 조위차왜가 돌아간 뒤 즉위를 축하하는 진하차왜가 왔으나, 1720, 1725년에는 조위차왜가 돌아가기 전에 진하차왜가 부산 왜관에 도착하였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 외교 사절의 상경이 금지되었음에도 1660년에 온 진하차왜 평성통(平成通)은 상경을 요구하였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의의와 평가]

조선 후기 일본에서 조선에 파견한 외교 사행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자료로 특히 한일 관계사에서 대마도주의 역할을 파악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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