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0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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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友曾 |
영어음역 | I Ujeu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 473-474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정수 |
[정의]
조선 전기 부산포 첨절제사를 지낸 문신.
[개설]
조선은 건국 후 국방 문제를 감안, 무질서하게 입국하는 왜인들을 통제하기 위해 1407년(태종 7) 부산포(富山浦)[동래]와 내이포(乃而浦)[일명 제포], 1426년(세종 8) 염포(鹽浦)[울산] 등 삼포를 개항하고 왜관(倭館)을 설치, 교역 또는 접대의 장소로 삼았다. 조선에서는 이 삼포에 한하여 일본 무역선의 내왕을 허락하였다. 그리고 무역과 어로가 끝나면 곧 돌아가게 하되, 항거 왜인(恒居倭人)[조선에 상주하는 왜인]이라 하여 거류한 지 오래된 자 60명만을 잠시 잔류할 것을 허락하였다. 그러나 왜인들은 이를 지키지 않고 계속 삼포에 들어와 거류했으며, 그 수가 해마다 증가하여 커다란 정치적·사회적 문제로 제기되었다. 이에 1506년 중종은 정치 개혁의 일환으로 왜인에 대해 법규에 따라 엄한 통제를 가하였다. 이에 왜인들의 불만이 고조되어 조선인들과의 충돌이 잦게 되었다.
[활동 사항]
이우증(李友曾)[?~1510]은 1509년(중종 4) 4월 12일 부산포 첨절제사에 임명되었다. 조정의 정책에 따라 재임 시 일본 거류민들을 철저히 통제하고, 일본에서 오는 사신들을 엄격히 다루어 그들의 불만이 높았다. 이우증이 부임한 지 1년 후인 1510년(중종 5) 4월 제포의 일본 거류민인 오바리시[大趙馬道]와 야쓰코[奴古守長] 등이 대마도주의 아들 소[宗盛弘]를 대장으로 삼아 4,000~5,000명의 난도(亂徒)들을 이끌고 부산을 공격하는 폭동 사건이 일어나고, 이 과정에서 이우증은 왜인에게 살해되었다. 삼포 왜란을 일으킨 왜인들은 심지어 폭동의 원인으로 이우증이 항거 왜인을 고되게 부리고, 박대한 것을 들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