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0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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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震應 |
영어음역 | Jin Eung |
이칭/별칭 | 혜찬(慧燦) |
분야 | 종교/불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미숙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범어사를 중심으로 임제종 운동을 벌인 승려.
[활동 사항]
진응(震應)[1873~1941]은 성은 진씨(陳氏), 법호는 혜찬(慧燦)으로, 1873년 전라남도 구례군 광의면에서 태어났다. 15세 되던 1887년에 구례 화엄사에서 응암(應庵)에게 출가하였다. 이후 화엄사와 선암사에서 수행한 뒤, 1896년 응암의 법을 이었다. 1913년 2월 23일 호은율사(虎隱律師)로부터 하동 쌍계사에서 구족계와 대승계를 받았으며, 호은율사의 계제자(戒弟資)로 「호은대율사비(虎隱大律師碑)」를 세웠다. 진응은 승려 박한영(朴漢永)·한용운(韓龍雲)과 함께 임제종 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임제종 운동은 범어사 등이 주도하여 1910년대 조선 총독부가 발표한 ‘사찰령’에 반대하는 종교 운동이었다. 사찰령은 조선의 사찰을 조선 총독부의 통제 아래에 두기 위하여, 사찰의 병합이나 이전 및 폐지 등을 모두 조선 총독부에게 허가 받도록 하고, 전국에 30개의 본산을 지정하여 각 교구마다 다른 사찰을 관리하게 하였다.
진응은 1924년 범어사 강원에서 강의하며 학인들을 지도하였다. 범어사 강원은 1900년 개설한 이래 사집과(四集科)·사교과(四敎科)·대교과(大敎科)의 체제를 갖추어 출발하였다. 1916년 이후 사집과 과정은 명정학교[4년제], 사교과 과정은 범어사 지방학림[3년제]으로 정비하고, 범어사 지방학림 졸업생은 대교과 과정과 서울의 중앙학림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체제로 정비하였다. 따라서 1924년 범어사 강원에는 대교과 과정만 남았다. 진응은 1941년 화엄사에서 세수 69세, 법랍 54세로 입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