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95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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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梵魚寺 泗溟大師 眞影 |
이칭/별칭 | 사명대사진영,사명당유정영탱,사명유정영정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미경 |
[정의]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에 전해 오는 역대 고승 진영 중 사명대사의 진영(眞影).
[개설]
사명당(四溟堂) 유정대사[1544∼1610]는 임진왜란 때 스승인 서산대사와 더불어 대표적인 의승(義僧)의 지도자로 알려져 있다. 승군(僧軍)을 통솔하여 왜군을 격파하는 데 공이 컸으며, 특히 1604년 일본 적중에 국서를 갖고 건너가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와의 담판에서 강화를 맺고 포로들을 데리고 귀국한 사실은 유명하다. 이처럼 구국 활동을 펼친 사명대사의 진영은 많은 사찰에 봉안되었는데 국내에는 현재 31점이 알려져 있다. 제작된 시기는 18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른다. 이 중 시기가 빠른 18세기 작품은 1768년의 안동 봉정사 진영, 1773년 밀양 표충사 진영, 1782년 의성 대곡사 진영, 1796년 대구 동화사 진영 등이 대표적이다.
[형태]
범어사의 사명대사 진영은 등받이가 높다란 의자에 오른쪽을 향하여 앉아 있는 전신교의좌상(全身交椅坐像) 형식이다. 얼굴 시선은 안면의 각도를 기준으로 측면상의 왼쪽 얼굴을 보인 좌안(左顔) 칠분면(七分面)의 상이다. 화면 상단 오른쪽에는 붉은 바탕에 묵서로 ‘四溟堂大禪師眞影(사명당대선사진영)’이라고 쓴 화제가 있다.
사명대사는 오른손으로는 의자 오른쪽 손잡이를 잡고 있고, 왼손은 주장자를 잡고 있다. 얼굴은 길쭉한 타원형이나, 꽉다문 입술과 약간 치켜올라뜬 듯한 두 눈은 날카로운 눈매를 하고 있어 의승병 대장으로서의 기상이 넘쳐나며 다른 고승 진영들에 비해 길고 섬세하게 묘사된 수염이 특징적이다. 특히 흰 깃이 달린, 군청색 장삼에는 농담에 의한 음영법(陰影法)과 그 위에 걸친 선홍색 가사(袈裟)의 강한 채색 대비, 둥글게 말린 옷자락 표현 등은 장식성을 극대화시킨다. 의자는 직선 위주에 높은 등받이를 하여 자칫 권위적이고 경직되어 보이기 쉬우나 등받이에 드리운 녹색천과 곡선 형태의 휘어진 다리가 오히려 유려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배경은 벽면과 바닥의 상하 2단으로 나뉘어져 상부는 녹색 바탕에 소형의 연속 문양을 반복하여 베풀었고, 바닥은 화문석으로 표현하였다.
[특징]
범어사 사명대사의 진영은 화기가 없어 제작 시기와 제작자가 밝혀지지 않았지만, 1868년의 운문사 삼중창주 진영이나 압곡사 의상대사 진영 등 19세기 조성된 진영들의 형식이나 표현법이 유사하여 19세기 후반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껏 국내에 전해오는 30여 점의 사명당 진영 가운데 복식에 보이는 음영법과 장식성, 전신교의좌상 등 19세기 고승 진영의 특징을 엿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의의와 평가]
범어사 사명대사 진영은 국내에 전해오는 30여 점 중 19세기 그려진 이모본(移模本)[원본을 두고 베껴 그리는 것으로 원본과 똑같이 그리는 모사와는 다름]으로 전신교의좌상 형식이나 복식의 음영법, 의자에 보이는 장식성 등 19세기 고승 진영의 특징을 잘 따르고 있는 작품이다. 특히 범어사의 원효대사 진영과 함께 동일 화승(畵僧)에 의하여 19세기에 제작된 작품으로써 불교회화사 및 역사적 가치 또한 높다. 2018년 1월 31일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8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