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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장각장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9521
한자 銅章刻匠
이칭/별칭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제26호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현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18년 2월 28일연표보기 - 동장각장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제26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동장각장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로 재지정
작가 목불 정민조 (木佛 鄭民朝)
수량 1명
관리자 부산광역시
문화재 지정 번호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정의]

부산광역시에서 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있는 동장각 (銅章刻) 제작 기술 보유자.

[개설]

동장각은 국새, 옥새 등 도장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금속에 인문(印文)을 새기는 기술을 말한다. 동장각장의 전승 계보는 황소산(黃蘇山), 석불(石佛) 정기호(鄭基浩), 목불(木佛) 정민조(鄭民朝)로 이어진다. 석불 정기호의 스승인 황소산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조선왕조 마지막 국새장이었음이 여러 구술 자료에서 산견되고 있다.

석불 정기호는 16세에 주변의 권유로 중국으로 건너가게 되고, 위당 정인보의 주선에 따라 황소산의 문하에서 전각을 배우게 되었다. 중국과 일본에서의 생활을 거쳐 1945년 창원 고향집으로 귀국한 이후 부산, 경상남도지역을 중심으로 전각과 동장각 제작에 매진하였다. 목불(木佛) 정민조(鄭民朝)는 석불(石佛) 정기호(鄭基浩)[1899∼1989]의 자제로 가업을 물려받듯이 이후 석불 정기호의 동장각과 목전각을 계승하였다.

[목불 정민조의 활동]

목불 정민조는 1944년생으로, 호(號)를 목불(木佛), 목인(木人), 고죽산인(古竹山人), 올좌실(兀坐室), 태고암(太古庵) 등을 사용하고 있으나 도필계(刀筆界)에서는 통칭 목불로 많이 알려져 있다.

정민조는 어린 시절부터 집안의 분위기로 일찍이 전각과 서예를 자연스레 받아들여 한학과 서예를 10대 때부터 익혔다. 중학 시절부터 서예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하였는데 부친의 말씀에 따라 구양순체과 안진경체를 병행하였다고 한다.

그는 50여년 각고의 노력으로 독특한 재료와 혁신적인 표현 방식을 얻었고, 아버지의 세계와 또 다른 영역을 개척하기도 했다. 이리하여 서예적 기교, 회화적 감각, 섬세한 새김질이 어우러진 이른바 목불만의 동장각의 세계를 이루게 되었다.

1968년 27살에 광복동 「희」다방에서 최초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1985년 4월에는 부산호텔 전시관에서 부친 석불과 함께 제2회 개인전 '석불(石佛) 목불(木佛) 부자전(父子展)'[부산호텔 전시관, 후원 부산일보사]을 개최하였다. 제3회 개인전은 1996년 경기도 용인의 한국미술관(韓國美術館)에서 초대 전시되었으며, 이후 2002년 11월 서울 갤러리 삼경에서 제4회 개인전 [2002년 11월 7일∼13일 '목불정민조전']을 개최하였다. 2007년 3월에는 제5회 개인전 '고목에 꽃이 피니 파도가 일어서다'를 부산의 갤러리 몽마르트 초대전으로 개최하였다.

[동장각의 계보]

우리나라의 근세 전각은 추사 김정희에서 비롯하여 이상적[1804∼1865], 정학교[1832∼1914], 오규일 등을 거쳐 강진희[1851∼1919], 오세창[1854∼1953], 유한익[1844∼1923], 김태석[1875∼1953] 등으로 내려와 최규상[1891∼1956], 정기호[1899∼1989], 이태익[1903∼1975], 김광업[1906∼1976], 고봉주[1906∼1993], 김재인[1912∼2005], 안광석[1917∼2004], 석도륜[1919∼현재], 이기우[1921∼1993], 정문경[1922∼2008], 김응현[1927∼2007] 등이 활동하였으며 김응현의 제자로 대한민국 국새를 각한 여원구[1932∼현재]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석불 정기호는 연령적으로는 다소 후대에 속하나 추사 김정희로부터 내려오는 우리나라 근대전각의 3세대로서 독보적인 경지를 구축하였다.

전승계보에서 석불 정기호의 스승인 황소산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일설에는 조선왕조 마지막 국새장이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석불을 황소산에게 소개한 사람도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사학자인 위당(爲堂) 정인보(鄭寅普)의 주선에 의한 것이어서 민족적 전각에 해당된다고 판단될 수 있다. 황소산과 추사와의 관계는 확인할 수 없으나 적어도 황소산은 동장각에 탁월했던 것으로 보아 국새전각의 계통을 계승하면서 추사 인전(印篆)의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연유로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정부 수립이 선포되고, 제1공화국은 석불 정기호를 국새 전각장으로 위촉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석불 정기호는 한국 근대 전각의 맥을 계승한 위창 오세창으로부터 ‘진한인(秦漢印)을 능가한다’[추진한(追秦漢)]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목불 정민조는 석불 정기호의 동장각 기법을 전수받아 평생 작업에 매진한 인물로, 전승계보가 명확하고 동장각에서의 조형성이 매우 뛰어나다.

[의의와 평가]

목불 정민조는 석불 정기호의 자제로 부친에게 사사받아 동장각과 목전각에서부친과 대등한 위치를 구축한 자이다. 정민조는 부친 석불 정기호에게서 30년 가까이 동전각에 매진하여 1985년에 석불·목불 부자전을 열게 됨으로 부친에게 인가를 받아 독립적 위치를 확보하였다. 이후 정민조는 다수의 전시회를 통하여 전통 동장각의 맥을 계승하였으며, 다양한 재료의 확대로 새로운 전각 영역을 개척하였다.

동장각의 제작기술은 재료의 수급은 물론 재료를 다루는 고도의 섬세한 기술이 요망됨으로 보존 계승해야 할 가치가 높다. 2018년 2월 28일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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