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9419 |
---|---|
한자 | 牙箏散調 |
영어의미역 | Ajaengsanjo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작품/음악·공연 작품 및 영상물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장로 102[온천동 164-66] |
시대 | 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박재혁 |
[정의]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되어 부산에서 전승되고 있는 아쟁산조.
[개설]
아쟁산조는 아쟁으로 연주하도록 짜인 산조를 가리킨다. 산조란 악기를 혼자서 연주하는 형식으로, 느린 장단으로 시작하여 차츰 빠른 장단으로 바뀌기 때문에 청중을 서서히 긴장시키면서 흥겨움을 끌어올리는 특징이 있다. 박대성류의 아쟁산조는 일반 산조와 달리 우조성(羽調性) 가락이 많다. 일반 산조는 주로 계면성(界面性) 가락으로 짜여져 애원하고 처장한 느낌을 주는데 반해, 박대성류의 아쟁산조는 우조성이 많이 가미되어 꿋꿋하며 웅건한 느낌이 강하다.
박대성의 이러한 음악적 특징은 바로 경상도 지방의 음악적 특징인 메나리조가 가진 음악적 특징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박대성류 아쟁산조는 경상도 사람들의 삶의 기질을 음악에 충분히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009년 12월 7일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산조아쟁의 유래]
아쟁은 알쟁(軋箏)이란 이름으로 중국의 『구당서(舊唐書)』에 처음 보이며 우리나라에는 고려 때 송나라에서 들어온 이후 현재까지 애용되어온 악기이다. 『고려사』 「악지(樂志)」에 7현으로 된 아쟁의 기록이 있고 조선 초기의 『악학궤범』에는 아쟁의 구조와 연주법에 대한 설명이 기록되어 있다. 아쟁은 가야금과 유사한 형태로서 나무 활이나 말총 활로 연주하는 악기이며 이런 예는 현재 다른 민족의 전통 음악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매우 희귀하고 독특한 악기이다. 아쟁은 그 구조와 음역 상 본래는 궁중 음악의 저음을 담당하는 악기이다. 그러던 것이 일제 강점기 때 박성옥(朴成玉, 1908~1983)에 의해 무용과 창극의 반주에 적합하도록 고음역의 아쟁으로 고쳐서 만들었는데 나중에 한일섭(韓一燮, 1929~1973)이 이것으로 산조를 연주하게 되면서 산조아쟁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
[산조의 역사]
산조는 기악 독주곡으로서 표현과 기교를 극대화하여 고도로 정제된 음악이다. ‘산조’는 그 명칭에서 보이듯이 ‘산문(散文)’이나 ‘산책(散策)’의 뜻처럼 틀에 얽매이지 않으며 자유롭게 즉흥성을 담고 있다. 산조는 무속 음악과 관련이 있는 시나위와 판소리의 영향으로 형성되었고 19세기 말엽에 가야금산조로부터 비롯되었다. 그 이후 「거문고산조」, 「대금산조」, 「피리산조」, 「해금산조」, 「아쟁산조」, 「단소산조」, 「태평소산조」 등이 명인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아쟁산조는 한일섭이 처음으로 만들었으며 완성된 시기는 1950년 전후로 추정되고 있다. 한일섭은 아쟁뿐만 아니라 「태평소산조」, 「대금산조」를 만들기도 하였고 신민요와 창극을 작곡할 정도로 능력이 뛰어난 명인이었다.
[아쟁산조의 특징]
박대성이 한일섭 문하에 입문하여 아쟁산조를 전수받은 것은 1964년 26세 때였다고 한다. 현재 박대성의 가락은 예전에 배운 한일섭의 원래 가락에 자신의 독자적인 가락을 첨가하여 변화를 준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박대성은 일부 계면조 가락을 우조로 바꾸거나 계면조 가락을 타더라도 우조 성음으로 연주하는 데가 많은 것이 특징인데, 한국고음반연구회장인 이보형은 이것을 ‘초 치거나 장 치지 않고 담백하게 구성한 가락’이라고 평하였다. 이점은 호남에서는 슬픈 진계면조를 선호하는 데 비해 영남은 담백하고 꿋꿋한 맛을 좋아하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이것은 부산에서 완성된 강태홍류 「가야금산조」[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제8호] 또한 우조 성음의 산조라는 중요한 특징과 일치하고 있다.
박대성의 아쟁산조는 스승인 한일섭의 가락을 보다 다양하게 발전시킨 점이 눈에 띈다. 박대성은 장단(리듬)을 다양하게 구사하여 섬세하면서도 아기자기한 맛을 가미하였고 청[KEY]의 변화를 통해 가락을 다채롭게 표현하고 있다. 그는 다른 산조 가락을 수용하여 아쟁에 융합시키기도 하였는데, 즉 한일섭의 가락에다 「거문고산조」, 「철현금산조」, 「대금산조」의 가락을 도입함으로써 기존 아쟁산조 가락을 한층 폭넓게 발전시켰다. 그의 음악적 재능은 짧은 산조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일반적으로 짧은 산조는 긴 산조를 발췌하여 짧게 연주하는 데 비해서 박대성은 원래 가락 1/3정도에다 나머지는 별개의 가락으로 화려하게 구성하여 짧은 산조를 만들었다고 한다.
박대성 산조 성음[음색]의 특징은 과장되지 않고 깔끔하며 섬세한 것이다. 그의 연주기법은 매우 독특해서 웬만해서는 따라 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한다. 오른손의 활은 부드럽고 매끄러운 소리를 내기위해 매우 절제하여 사용되며, 왼손의 농현을 포함한 표현법은 매우 까다롭기로 정평이 나 있다. 산조아쟁의 특성상 고음역이 많기 때문에 자칫하면 산조의 성음이 가벼워질 수 있으나 박대성은 맨 아래 줄인 최저음을 자주 사용함으로써 음색이 조화롭고 성음이 깊은 느낌을 주고 있다.
[의의와 평가]
산조아쟁은 우리민족의 독창성이 빚어낸 악기이며 산조 또한 판소리에 못지않게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될만한 음악이다. 산조는 무속과 판소리에 뿌리를 둔만큼 우리 민족의 역사와 전통을 그대로 담고 있으며, 산조의 형성과 발전 과정을 통해서 고도의 전문성과 예술성을 지니게 되었다. 아쟁산조 보유자 박대성은 아쟁산조의 창시자인 한일섭의 제1세대 수제자이다. 박대성의 전승계보는 동문수학한 국악계의 다른 명인들과 함께 전승 계보가 분명하고 가락의 정통성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의 음악적 기량과 수준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부산과 영남권뿐만 아니라 전국의 무대에서 폭넓은 연주 활동과 함께 아쟁산조 전승·보존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