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김석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9412
한자 金錫禧
영어음역 Gim Seokhee
분야 문화·교육/교육,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로112번길 34[수안동 471]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종봉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학자
성별
본관 김해(金海)
대표경력 부산대학교 교수
출생 시기/일시 1928년연표보기 -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45년 - 동래중학교 졸업[4년제]
수학시기/일시 1952년 - 부산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학과 졸업
수학시기/일시 1957년 - 부산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수료
활동시기/일시 1953년 - 부산원예고등학교 교사로 부임
활동시기/일시 1957년 - 경남고등학교 교사로 부임
활동시기/일시 1961년 - 부산교육대학 교수로 부임
활동시기/일시 1965년 - 부산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부임
활동시기/일시 1972년 - 부산시 문화재 위원에 위촉
활동시기/일시 1976년 - 경상남도 문화재 위원 위촉 및 부산대학교 한일문화연구소장 부임
활동시기/일시 1976년 - 경상남도 문화재 위원에 위촉
활동시기/일시 1977년 - 부산대학교 박물관장에 취임
활동시기/일시 1985년 - 부산대학교 인문대학장에 취임
활동시기/일시 1987년 - 부산대학교 한국문화연구소장에 취임
활동시기/일시 1987년 - 진단학회 평의원에 선임
활동시기/일시 1991년 - 부산사학회장에 취임
활동시기/일시 1991년 -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으로 위촉
활동시기/일시 1992년 - 부산시사편찬위원회 부원장으로 취임
몰년 시기/일시 2012년 8월 13일연표보기 - 사망
출생지 김석희 출생지 -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로 112번길 34[수안동 471]지도보기
거주|이주지 김석희 거주지 -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 255
학교|수학지 동래중학교 - 부산광역시 동래구 충렬 대로 285번길 22[칠산동 360]지도보기
학교|수학지 부산대학교 - 부산광역시 금정구 부산 대학로 63번길 2[장전동 산30]지도보기
묘소 부산 추모 공원 -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정관로 225[두명리 481]지도보기

[정의]

부산 출신의 대표적인 역사학자.

[가계]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다촌(茶村). 아버지는 김우태(金宇泰)이고, 어머니는 박선(朴善)이다.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부인은 곽영애(郭英愛)이고, 2남 1녀의 자녀를 두었다.

[활동 사항]

김석희(金錫禧)는 1928년 부산광역시 동래구 수안동에서 태어났으며, 1945년 동래중학교[4년제]를 졸업한 후 철마초등학교·명륜초등학교·학산여자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52년 부산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학과를 졸업하고, 1957년 부산대학교 대학원 사학과를 수료하였다. 부산원예고등학교[1953]·경남고등학교 교사[1957]와 부산교육대학 교수[1961]를 거쳐 1965년 부산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임용되었다.

부산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박물관장[1977] 및 인문대학장[1985] 등과 대외적으로 부산시 문화재위원[1972], 경상남도 문화재위원, 부산대학교 한일문화연구소 소장[1976], 부산시사편찬위원회 위원 및 부위원장[1992] 등을 역임하였을 뿐만 아니라 역사학자의 큰 영예인 국사편찬위원회 위원[1991]으로도 활약하였다.

학술 활동으로는 현재 부산대학교 인문학의 대표 연구소인 한국민족문화연구소[당시 한국문화연구소]의 설립을 주도하여 소장을 역임[1987]하였고, 진단학회 평의원[1987]에도 선임되었다. 또한 지역의 대표적 사학회인 부산사학회 회장[1991]을 지냈다. 특히 한국문화연구소장으로 재직할 때는 한국 문화 자료 총서인 『경상도 언양현 호적 대장(慶尙道彦陽縣戶籍大帳)』을 비롯한 여러 총서를 발간하여 지역사 연구에 초석을 쌓았다. 2012년 8월 13일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김석희는 40여 년간 부산대학교를 비롯한 부산 지역의 교육계에 재직하면서 후학을 양성하였을 뿐만 아니라 엄정한 실증성을 바탕으로 조선 시대사와 지역사 연구에 평생을 바쳐 온 역사학자이다. 임진왜란 시기 영남 지역의 의병장 곽재우(郭再祐) 연구와 의병 전쟁에 대한 연구에 매진하여 많은 연구 성과를 축적하였고, 이를 통해 임진왜란에 대한 재평가를 시도하였다. 또한 조선 시대와 개항기 부산 지역사 연구, 일제 강점기 부산의 항일 운동 연구 등에 매진하였다.

그리고 조선 후기 중요 자료로 평가받는 언양현·단성현 호적 대장을 발굴하여 학계에 알렸을 뿐만 아니라 이에 대한 여러 논문을 발표하여 조선 후기 중세 사회 해체 과정의 해명에 획기적 방법을 제시하였고, 지역사[언양현·단성현] 연구의 새로운 영역이 자리 잡는 데 기여하였다.

저술로는 연구를 집대성한 『조선 후기 지방 사회사 연구』[혜안, 2004]가 있고, 그 외에 지역사인 『부산시지』 상[1974, 공저], 『부산시사』 1[1989, 공저], 『부산의 문화재』[1977·1982], 『개항 백년-부산사의 재조명』[1976, 공저], 『동래고등학교 80년사』[1978, 공저], 『동래기영회 140년사』[1984, 공저], 『제승당지』[1986, 공저], 『세종 문화 유적 총람』 3[1989, 공저], 『한국사의 이해』[1993, 공저] 등의 여러 저서와 60여 편이 넘는 논문이 있다.

[묘소]

묘소는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정관로 225[두명리 481번지]에 있는 부산 추모 공원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84년 교육 공로상[문교부 장관], 1993년 국민 훈장 모란장[대통령]을 받았다.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