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93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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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明成 |
영어음역 | Gim Myeongseong |
분야 | 문화·교육/체육,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사직동 930-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남태우 |
[정의]
부산 출신의 롯데 자이언츠 감독을 지낸 인물.
[활동 사항]
김명성(金明成)은 1946년 9월 3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경남중학교[1960~1963]를 졸업하였고, 1963년 부산공업고등학교에 입학하여 그해 부산에서 열린 제6회 전국 4도시 대항 고교 야구 대회 결승에서 부산고등학교를 2-0으로 눌러 모교에 야구부 창단 이래 첫 우승을 안겼다. 1965년 한국전력공사 야구부에 입단하였고, 1968년 육군에서 선수 생활을 계속하였다. 1970년 실업 야구 리그 다승왕을 차지하고 실업 야구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1969년과 1971년 국가 대표로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였다. 1971년 한국전력공사에 복귀하여 제17회 전국 야구 선수권 대회 우승, 1971년 제9회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정상에 올랐다. 1973년 실업 야구 연맹전 추계 리그 최고 수훈상을 받았다.
1977년 선수 생활을 그만둔 뒤 코치 생활을 시작하였다. 1982년 프로 야구 출범 당시 고향 부산 연고 팀인 롯데 자이언츠에서 창단 투수 코치를 맡았다. 1986년 청보 핀토스 투수 코치, 1987년 태평양 돌핀스 투수 코치, 1989~1990년 삼성 라이온즈 투수 코치를 역임하였다. 1994~1996년 이광환 감독 밑에서 LG 트윈스 투수코치로 일할 때는 한국 프로 야구 최초로 ‘선발-셋업-마무리’라는 투수 분업 구조를 완성하기도 하였다.
1998년 롯데 자이언츠의 투수 코치로 복귀한 뒤 1998년 6월 김용희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중도 하차하자 그해 10월까지 감독 대행을 맡았다. 이어 이듬해 정식 감독이 되어 2001년 7월 24일까지 복무하였다. 1999년 드림 리그 2위를 차지하며 한국 시리즈에 올랐지만 한화 이글스에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2000년에는 매직리그 2위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였지만, 준플레이오프에서 삼성 라이온즈에 져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였다. 2001년 성적 부진으로 팀이 하위권에 처지자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7월 24일 심장 마비로 쓰러져 사망하였다.
[묘소]
김명성의 유해는 유족들의 뜻에 따라 부산 영락 공원에서 화장된 뒤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봉항리 산157번지 풍산 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
[상훈과 추모]
1971년 국민 훈장 석류장, 1973년 실업 야구 최고 수훈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