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93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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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沈載元 |
영어음역 | Sim Jaewon |
분야 | 문화·교육/체육,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남태우 |
[정의]
부산 출신의 국가 대표 야구 선수이자 롯데 자이언츠 선수로 활동한 인물.
[활동상황]
심재원(沈載元)은 부산 남부민국민학교[현 남부민초등학교], 부산개성중학교[1968~1970], 부산고등학교[1971~1973]를 나온 뒤 성균관대학교[1974~1977]와 한국화장품[1977년 입단]에서 선수 생활을 하였다. 부산고등학교 재학 시절이던 1972년 제26회 전국 지구별 초청 고교 야구 대회에 출전해 준우승을 차지하였다. 준결승에서 마산고등학교에 4-2로 이겼지만 결승에서 군산상업고등학교에 4-5로 역전패하였다. 성균관대학교에 다니던 1974년, 제8회 대통령기 쟁탈 전국 대학 야구 대회에 나가 준우승을 기록하였다.
포수로 자질을 인정받아 여러 차례 국가 대표로 선발되어 1978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제25회 세계 야구 선수권 대회에 주전 포수로 나섰다. 한국은 제25회 세계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8승 2패로 3위에 올랐다. 이해에 심재원은 실업 야구 올스타전 감투상을 받았다. 또한 1982년 서울에서 열린 제27회 세계 야구 선수권 대회에 주전 포수로 나서 최동원(崔東元), 선동열(宣銅烈) 등 후배들을 이끌며 결승에서 일본을 꺾고 우승하는 데 주역이 되었다.
1983년 프로 야구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하였다. 1984년에는 롯데 자이언츠가 한국 시리즈에서 우승할 때 기여하였다. 1985년 MBC 청룡으로 이적하였고, 팀 이름이 LG 트윈스로 바뀐 이후에도 활약을 이어 갔다. 1991년 38세로 당시 역대 최고령 포수로 활약하다 이듬해 은퇴한 뒤 1994년까지 LG 트윈스 코치로 활약하였다.
별명이 ‘심통’이었던 심재원은 프로 야구에서 500경기 이상 출장한 포수 중 도루 저지율[4할 2푼 4리] 1위에 올라 있다. 한국 야구 사상 투수 리드가 가장 좋았던 포수로 꼽힌다. LG 트윈스에서 코치로 일하던 1994년 5월 19일 폐암으로 41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화성군 남양면 무송리 선산에 있다.
[상훈과 추모]
체육 훈장 거상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