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93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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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廣州李氏 |
영어의미역 | Gwangju Yisi|Gwangju Yi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부산광역시 |
집필자 | 주영택 |
[정의]
이당을 시조로 하고, 이흥원을 입향조로 하는 부산 지역의 세거 성씨.
[연원]
광주 이씨 시조 이자성(李自成)은 칠원(漆原)에서 대대로 살아온 호족의 후예로서 신라 내물왕 때 내사령(內史令)을 지냈다. 시조는 신라가 고려에 항복하자 고려에 불복하고 절의를 지켰으므로 고려 태조가 회안(淮安) 호장(戶長)으로 삼았다. 처음에는 본관을 회안으로 하였다가 940년(고려 태조 23)에 지명이 광주(廣州)로 개칭되어 이를 관향으로 삼게 되었다.
그러나 이자성으로부터 소목이 실전되어 고려 말기에 현달했던 이당(李唐)을 시조로 삼았다. 이당의 아들 5명이 모두 문과에 급제했는데, 그중 둘째 아들 이집(李集)은 고려 말기의 학자로 충목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판전교시사를 지낸 인물이다. 이집은 정몽주(鄭夢周)[1337~1392], 이색(李穡)[1328~1396], 이숭인(李崇仁)[1347~1392] 등과 교유하였고, 공민왕 때 신돈(辛旽)[?~1371]을 논핵하다가 한때 영천으로 피신하여 화를 면하기도 했다. 광주 이씨는 조선조에 상신 5명, 문형 2명, 청백리 5명, 공신 12명, 문과 급제자 188명을 배출한 명문 집안이다.
광주 이씨는 석탄공파, 암탄공파, 율정공파, 둔촌공파, 좌의정공파, 광천공파, 문경공파, 참판공파(參判公派) 등 15여 파가 있다. 이 가운데 석탄공파는 이한희(李漢希)를 1세조로 하여 고려 말기의 두문동 72현(杜門洞 七十二賢)의 한 사람인 석탄(石灘) 이양중(李養中)을 파조로 한다.
[입향 경위]
부산에는 광주 이씨 참판공파의 12세 이흥원[1714~1776]이 1700년(숙종 26) 초반에 포항에서 기장으로 이거하여 입향하였다.
[현황]
2000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광주 이씨는 2,193가구에 7,216명[남 3,685명, 여 3,531명]이 부산 지역에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광주 이씨의 세거지는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송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