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93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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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豊壤趙氏 |
영어의미역 | Pungyang Chosi|Pungyang Cho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부산광역시 |
집필자 | 김연지 |
[정의]
조맹을 시조로 하고, 조만용을 입향조로 하는 부산 지역의 세거 성씨.
[개설]
조씨(趙氏)는 원래 전욱(顓頊)의 후예로서 주나라 목왕(穆往)이 서언왕(徐堰王)을 칠 때 공을 세운 조부(造父)란 사람을 조성(趙城)에 봉하자 그가 나라 이름을 따서 성으로 삼았다고 한다. 조씨의 본관은 문헌에 200여 본으로 전하고 있으나 그중 몇 본이 현존하고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풍양·한양·양주·평양·김제·임천·배천·함안·옥천·횡성 등 10여 본이 대본으로서, 이들이 조씨 전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조씨의 상계는 일정하지 않다. 따라서 이들은 다른 성씨들과는 달리 동성이라고 해서 반드시 한 할아버지의 자손임을 내세우지는 않는다. 그러면서도 조씨끼리는 전통적으로 본이 달라도 서로 통혼하지 않는 것이 관습으로 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조씨가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풍양 조씨(豊壤趙氏)는 고려 태조로부터 사성(賜姓)받았다 하고, 양주·평양·임천·배천 등은 송대의 귀화족으로 알려져 있다. 풍양 조씨 외에도 동래부에 입향한 조씨는 평양 조씨가 있다.
[연원]
풍양 조씨의 시조 조맹(趙孟)은 초명이 ‘암(巖)’으로서 풍양현(豊壤縣)의 천마산 아래에 살고 있었다. 조맹은 만년에야 고려 태조 왕건(王建)을 만나 후삼국 통합에 공을 세워 개국 공신이 되고 이름을 ‘맹(孟)’으로 하사받았으며, 벼슬이 문하시중 평장사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후 중간 6세가 실전되어 조지린(趙之藺)을 1세조로 하는 전직공파(殿直公派)와 몇 세가 실전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조신혁(趙臣赫)을 1세로 하는 평장공파(平章公派)로 나누어졌다. 이 양파는 서로 촌수를 가릴 수 없어 족보도 따로따로 편찬하고 있다. 풍양 조씨의 파계는 전직공파에서 다시 호군공파(護軍公派)·회양공파(淮陽公派)·금주공파(錦州公派)로 나뉘고, 평장공파는 조신혁의 증손대에서 남원공파(南原公派)를 이루어 오늘날 풍양 조씨는 이 4파 아래 총망라되어 있다.
[입향 경위]
조만용(趙萬容)은 남원 부사를 지낸 조계팽(趙季砰)의 후손으로 김해에서 왔다. 입향 시기는 알 수 없다.
[현황]
1937년 문기주(文錡周)가 편찬한 『동래군지』의 성씨조에는 풍양 조씨가 우거(寓居) 성씨로 기록되어 있다. 2000년 인구 조사에서 풍양 조씨는 957가구에 3,144명[남자 1,606명, 여자 1,538명]이 부산 지역에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