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93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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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平壤趙氏 |
영어의미역 | Pyeongyang Chosi|Pyeongyang Cho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부산광역시 |
집필자 | 김연지 |
[정의]
조춘을 시조로 하고, 조석기를 입향조로 하는 부산 지역의 세거 성씨.
[개설]
조씨(趙氏)는 원래 전욱(顓頊)의 후예로서 주나라 목왕(穆往)이 서언왕(徐堰王)을 칠 때 공을 세운 조부(造父)란 사람을 조성(趙城)에 봉하자 그가 나라 이름을 따서 성으로 삼았다고 한다. 조씨의 본관은 문헌에 200여 본으로 전하고 있으나 그중 몇 본이 현존하고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풍양·한양·양주·평양·김제·임천·배천·함안·옥천·횡성 등 10여 본이 대본으로서, 이들이 조씨 전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조씨의 상계는 일정하지 않다. 따라서 이들은 다른 성씨들과는 달리 동성이라고 해서 반드시 한 할아버지의 자손임을 내세우지는 않는다. 그러면서도 조씨끼리는 전통적으로 본이 달라도 서로 통혼하지 않는 것이 관습으로 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조씨가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풍양 조씨(豊壤趙氏)는 고려 태조로부터 사성(賜姓)받았다 하고, 양주·평양·임천·배천 등은 송대의 귀화족으로 알려져 있다. 평양 조씨 외에도 동래부에 입향한 조씨는 풍양 조씨가 있다.
[연원]
평양 조씨의 시조 조춘(趙椿)은 고려조에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추밀원 부사(樞密院副使)로서 남송(南宋)에 들어가 금나라를 정벌한 공으로 상장군이 되었다. 그의 선대는 중국에서 귀화했다고 하지만 어느 연대에 누가 어디로 왔는지는 알 수 없고, 현손 정숙공(貞肅公) 조인규(趙仁規)[1237~1308]가 고려 충렬왕 때 문하시중에 선충익대 보조공신(宣忠翊戴輔祚功臣)으로 평양부원군(平壤府院君)에 봉해진 까닭에 후손들이 본관을 평양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입향 경위]
조석기(趙碩基)는 평양백 문충공(文忠公) 조준(趙浚)[1346~1405]의 후손으로 서울[한양]에서 왔다. 입향 시기는 알 수 없다.
[현황]
1937년 문기주(文錡周)가 편찬한 『동래군지』의 성씨조에는 평양 조씨가 우거(寓居) 성씨로 기록되어 있다. 2000년 인구 조사에서 평양 조씨는 319가구에 1,052명[남자 549명, 여자 503명]이 부산 지역에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