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93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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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朔寧崔氏 |
영어의미역 | Saknyeong Choisi|Saknyeong Choi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부산광역시 |
집필자 | 김연지 |
[정의]
최천로를 시조로 하고, 최윤번을 입향조로 하는 부산 지역의 세거 성씨.
[개설]
최씨(崔氏)의 본관은 문헌에 대략 300여 본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거의가 후손들의 거주 지명을 나타내는 것일 뿐, 그중 시조가 분명히 밝혀져 있고 후손들이 현존하는 성씨는 30여 본에 지나지 않는다. 최씨의 실질적인 시조는 신라 말의 최치원(崔致遠)[857~?]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최씨의 분파가 최치원을 1세로 하는 경주 최씨(慶州崔氏)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그러나 동조동근(同祖同根)[조상이 같고 근본이 같음]을 주장하는 최씨의 전모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범최씨(汎崔氏)의 선대 세계 미분파 연원을 체계화한 『경주 최씨 상계 세보』에 의하면, 최치원은 소벌도리(蘇伐都利)의 23대손으로 최치원의 윗대에서 갈린 본관으로 개성·삭녕·동주와 전주 최씨의 군옥파(群玉派)가 있고, 그 외에는 최치원의 자손에서 분파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세보에 대해서는 많은 비판과 이론이 있지만 모든 최씨가 소벌도리와 최치원을 잇는 신라 이전 사람의 후예가 된다는 데에는 별다른 이론이 없는 것 같다. 삭녕 최씨 외에도 동래에 입향한 최씨는 경주 최씨, 영천 최씨 등이 있다.
[연원]
삭녕 최씨의 시조 최천로(崔天老)는 고려조에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를 지냈다. 그의 후손 최유가(崔瑜價)는 1190년(명종 20) 국자감 대사성(國子監大司成)·추밀원 부사(樞密院副使)를 지냈다. 그러나 문헌이 실전되어 최천로와 최유가와의 세계를 상고할 수 없고, 또다시 최유가 이후 4, 5세의 세계가 실전되었다. 그래서 최천로를 시조로, 최유가를 선조로 하고 그의 후손인 친어모군 낭장(親禦侮軍郎將)을 지낸 최선보(崔善甫)를 낭장공파 1세조로, 회경전 부사(會慶殿副使)를 지낸 최연(崔珚)을 부사공파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잇고 있다.
본관은 최천로가 삭녕의 정언동(正言洞)에 살았고, 또 시조 최천로와 선조 최유가가 평장사를 지냈다 해서 그곳이 삭녕 평장동이라 불리었기 때문에 삭녕으로 하였다.
[입향 경위]
입향 시기는 알 수 없고 동래 입향자는 최윤번(崔潤藩)이다.
[현황]
1937년 문기주(文錡周)가 편찬한 『동래군지』의 성씨조에는 우거(寓居) 성씨로 기록되어 있다. 2000년 인구 조사에서 삭녕 최씨는 1,068가구에 3,499명[남자 1,892명, 여자 1,607명]이 부산 지역에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