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93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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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永川崔氏 |
영어의미역 | Yeongcheon Choisi|Yeongcheon Choi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부산광역시 |
집필자 | 김연지 |
[정의]
최한을 시조로 하고, 최경윤을 입향조로 하는 부산 지역의 세거 성씨.
[개설]
최씨(崔氏)의 본관은 문헌에 대략 300여 본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거의가 후손들의 거주 지명을 나타내는 것일 뿐, 그중 시조가 분명히 밝혀져 있고 후손들이 현존하는 성씨는 30여 본에 지나지 않는다. 최씨의 실질적인 시조는 신라 말의 최치원(崔致遠)[857~?]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최씨의 분파가 최치원을 1세로 하는 경주 최씨(慶州崔氏)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그러나 동조동근(同祖同根)[조상이 같고 근본이 같음]을 주장하는 최씨의 전모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범최씨(汎崔氏)의 선대 세계 미분파 연원을 체계화한 『경주 최씨 상계 세보』에 의하면, 최치원은 소벌도리(蘇伐都利)의 23대손으로 최치원의 윗대에서 갈린 본관으로 개성·삭녕·동주와 전주 최씨의 군옥파(群玉派)가 있고, 그 외에는 최치원의 자손에서 분파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세보에 대해서는 많은 비판과 이론이 있지만 모든 최씨가 소벌도리와 최치원을 잇는 신라 이전 사람의 후예가 된다는 데에는 별다른 이론이 없는 것 같다. 영천 최씨 외에도 동래에 입향한 최씨는 경주 최씨, 삭녕 최씨 등이 있다.
[연원]
영천 최씨 시조 최한(崔漢)은 전주 최씨(全州崔氏) 시조 최균(崔均)의 10세손이다. 그는 고려 의종과 명종 대의 공신으로 연산부원군(燃山府院君)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전주 최씨에서 분적하여 그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영천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입향 경위]
수찬(修撰)을 지냈던 최우직(崔友稷)[1600~?]의 현손인 최경윤(崔敬胤)이 조선 후기 영천에서 부산으로 입향하였다.
[현황]
1937년 문기주(文錡周)가 편찬한 『동래군지』의 성씨조에는 영천 최씨가 우거(寓居) 성씨로 기록되어 있다. 2000년 인구 조사에서 영천 최씨는 507가구에 1,663명[남자 870명, 여자 793명]이 부산 지역에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