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93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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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梁山李氏 |
영어의미역 | Yangsan Yisi|Yangsan Yi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부산광역시 |
집필자 | 김현라 |
[정의]
이만영을 시조로 하고, 이식을 입향조로 하는 부산 지역의 세거 성씨.
[연원]
양산 이씨는 인천 이씨에서 분적되었다. 시조 이만영(李萬英)은 고려 말기에 문과에 급제하여 조선 태조 때 이조 판서를 지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이전생(李全生) 역시 고려 말기에 문과에 급제, 1371년(공민왕 20) 순찰사가 되어 각 고을을 순시할 때 양산에 이르러 하북면 초산리에 자리를 잡고 살았으며, 조선 태종 때 공조 전서, 예조 전서, 중추부 영사 등을 지내고 양산부원군(梁山府院君)에 봉해졌기 때문에 후손들이 본관을 양산으로 삼게 되었다.
양산 이씨로 유명 인물은 계유정난에 고초를 겪은 이전생의 세 아들인 이징석(李澄石)[?~1462], 이징옥(李澄玉)[?~1453], 이징규(李澄圭)[1403~1468] 등이다. 양산 이씨는 맏아들 이징석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이징옥의 후손들은 인천 이씨로 환원하였고, 이징규는 영산 이씨(靈山李氏)로 분파되었기 때문이다. 이징석의 아들인 현령 이팔동(李八仝)은 두 아들을 두었다. 장남 부사직(副司直) 이윤조(李胤祖)와 군사(郡事) 이윤환(李胤環)이었다. 이윤조를 중심으로 사직공파(司直公派)가, 이윤환을 중심으로 군사공파(郡事公派)가 형성되었다.
[입향 경위]
양산 이씨의 동래 입향조는 이식(李植)으로, 그는 이징석의 증손자로 조선 전기에 양산에서 왔다. 이식은 사직공파로 이윤조의 차남이다.
[현황]
1937년 문기주(文錡周)가 편찬한 『동래군지』의 성씨조에는 양산 이씨가 세거(世居) 성씨로 기록되어 있다. 2000년 통계표에 의하면 양산 이씨는 260가구에 801명[남 441명, 여 360명]이 부산 지역에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 현재 양산 이씨는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여동과 재송동 등지에서 세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