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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박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9344
한자 慶州朴氏
영어의미역 Gyeongju Parksi|Gyeongju Park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부산광역시
집필자 김연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씨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
입향시조 박태성(朴泰星)
입향 시기/일시 1720~1730년연표보기 - 박태성 동래로 입향
본관 경주 - 경상북도 경주시
입향지 동래 - 부산광역시 동래구

[정의]

박혁거세를 시조로 하고, 박태성을 입향조로 하는 부산 지역의 세거 성씨.

[개설]

박씨(朴氏)의 본관은 문헌에 300여 본이 전해지고 있으나 시조가 분명하게 밝혀진 성씨는 대략 70본 안팎이다. 모든 박씨는 박혁거세(朴赫居世)를 유일조(唯一祖)로 받들고 있다.

[연원]

경주 박씨(慶州朴氏)는 신라 시조왕 박혁거세의 후손으로 영해(寧海)·면천(沔川)·강릉(江陵) 등 박씨와 함께 상고 세계(世系)에서 분적한 파사왕(破娑王) 계통이다. 따라서 경명왕(景明王)의 여덟째 왕자인 박언의(朴彦儀)가 월성 대군(月城大君)에 봉해져서 월성으로 관적(貫籍)한 월성 박씨와는 계통을 달리하고 있다. 경주 박씨는 파사왕의 25대손이요, 영해 박씨의 시조 박제상(朴堤上)의 21대손인 박도덕(朴度德)을 중조로 하고 있다.

경주 박씨는 고려조의 명문으로서 관적지는 경주이지만 고려의 수도 개경으로 옮겨 대대로 고관대작을 지내면서 영화와 번영을 누려오다가 중조 박도덕의 11세손 박앙(朴盎)이 단종조에 저작(著作) 벼슬을 하고 있을 때 단종이 왕위를 찬탈 당하자 관직을 버리고 남하하여 함안군 서부 광평리 백이산 아래에 살 만한 곳을 정하였다. 유덕자(有德者)와 학자들이 대를 이어 군내의 높은 문벌(門閥)이 되었으므로 박앙을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잇고 있다. 1세조의 묘소는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 명동 마을의 풍계산에 있다.

[입향 경위]

박태성(朴泰星)이 경상북도 칠곡 석전리(石田里)에 세거하다가 1720년(경종 즉위년)부터 1730년(영조 6) 사이에 동래로 입향하였다. 박태성은 1731년(영조 7) 동래 읍성을 수축할 때 남소(南所) 제2패장(牌將)을 지냈다. 이후 수첩청 백총, 교련청 교련관 등 무임직을 역임하였다.

[현황]

1934년 조선 총독부에 발행된 『朝鮮の姓』의 동래군조에는 경주 박씨구포면에 18호가 거주한다고 했으며, 1937년 문기주(文錡周)가 편찬한 『동래군지』의 성씨조에는 경주 박씨가 세거(世居) 성씨로 기록되어 있다. 현재 부산 지역에서는 세거지를 확인할 수 없다. 2000년 인구 조사를 보면 경주 박씨는 906가구에 2,902명[남자 1,354명, 여자 1,54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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