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91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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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濟漢- |
영어음역 | George Henry Rue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서구 대티로 170[서대신동 2가 382]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서용태 |
부산광역시 서구 서대신동 2가에 있는 부산위생병원을 설립한 의사.
[활동 사항]
1. 일제 강점기
조지 H. 루(George Henry Rue)[한국 이름 유제한(柳濟漢), 1889~1993] 박사는 1889년 6월 27일 미국 캘리포니아 오클랜드(Oakland)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P. 루(H. P. Rue)이고, 어머니는 엘리자베스 F. 나이트(Elizabeth F. Knight)이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로마린다(Lomalinda)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1929년 5월 7일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의 의료 선교사로 조선에 부임하여 순안병원 병원장에 취임하였다. 순안병원은 1908년 9월 24일 평안남도 순안에 미국 동료 선교사 노설 박사(Dr. Riley Russell)가 설립한 선교 병원으로 조지 H. 루 박사가 취임한 후 조선총독부의 정식 병원으로 인가를 받았다.
이후 유제한이라는 한국 이름을 갖게 된 조지 H. 루는 1931년 서울 소공동에 2층 집을 마련하여 진료 활동을 하였고, 같은 해 11월 인사동으로 이전하여 경성요양의원을 개원하였다. 1933년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휘경동 29번지 일대 약 3만 9669.42㎡[1만 2000평]의 병원 부지를 마련하여 1936년 2월 15일 35병상 규모의 경성요양병원[Seoul Sanitarium & Hospital]을 세웠는데, 이것이 바로 서울위생병원[현 삼육의료원 서울병원]의 전신이다.
그리고 1936년 4월에는 경성요양병원 부속 간호원 양성소를 설립하여 지금의 삼육보건대학교로 발전하였다. 이처럼 유제한에 의해 서울위생병원과 삼육보건대학교의 초석이 다져졌다. 하지만 1941년 신사 참배 강요 등 일제의 탄압으로 미국으로 추방되면서 병원 사업은 중단되었다.
2. 해방 후
해방과 함께 병원 사업이 부활하였고, 1947년 4월 다시 내한하여 병원장으로 재취임하면서 병원 이름을 서울위생병원이라고 바꾸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는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의 주치의로 위촉을 받았으며, 그해 가을부터는 미국 대사관 직원과 재한 외국인 건강 관리 의사로 위촉을 받았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여 병원이 인민군의 수중에 들어갔지만 유제한은 서울 수복 후 병원 복구 사업과 부상병 치료에 전념하였다. 그러다가 전세가 악화되자 1951년 1·4 후퇴 때 부산으로 피난을 와서 서구 부용동에 20병상 규모의 UNCAC[유엔 원조처] 경남연합임시산원을 개설하였다. 또한 같은 달 맥아더 사령부에 요청하여 L.S.T[수송선]를 배치 받아 부산에서 환자 등 수천 명을 태우고 제주도 성산포에 도착하여 임시 병원을 열어 환자 구호에 나섰다.
한편, 유제한은 조선에 오기 전인 1921년 메이 벨 에임스(Mae Belle Ames)와 결혼하였는데, 경성요양병원을 설립하던 해에 부인이 사망하여 한강변 지금의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안장하였다. 조선에서 추방된 후 1946년 미국에서 산과 간호사로 일하던 젤다 그레이스 레아(Zelda Grace Lea, Mrs. Rue)[한국 이름 유은혜]와 재혼하였다. 유제한과 함께 내한한 유은혜는 전쟁고아를 위한 고아원과 입양 사업, 간호 학교 운영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유제한은 1953년 3월 부산 서구 서대신동 2가 382번지에 병원 부지를 매입하여 이듬해 병원 신축 공사를 완공하고 서울위생병원 부산 분원인 현 부산위생병원을 설립하였다.
32년간의 의료 선교사의 직무를 마치고 1967년 8월 3일 명예 퇴임한 유제한은 미국으로 돌아가 워싱턴 주 북단에 위치한 멜로우 스톤 섬의 작은 마을 노드랜드(Nordland)에서 거주하다가 1993년 11월 18일 오후 8시 47분에 9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묘소]
묘소는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 144번지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있으며,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나는 한국에 구경삼아 나온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한국에 나의 뼈를 묻을 각오로 온 사람이었습니다. 이리가 한국 백성을 해치러 온다면 도망가는 목자로서가 아니라 그 양을 위해 희생을 각오하고 온 선교사였습니다.” “나는 어느 누구도 소홀히 치료하지 않았습니다. 이승만 박사를 치료할 때나 시골의 아낙네를 치료할 때나 똑같이 나의 최선의 노력을 바쳤습니다.”
[상훈과 추모]
1954년 3월 대한민국 문화 훈장 및 이승만 대통령의 감사장 수여를 비롯하여 1963년 10월 중앙대학교에서 명예 법학 박사 학위와 1965년 2월 수도의과대학[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에서 명예 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1966년 1월 김현옥 서울특별시장으로부터 명예 시민증을 받았다.
2004년 11월 5일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서 평생 의료 선교사로 봉사하였던 유제한 박사의 추모비 제막식이 있었으며, 2011년 10월 삼육의료원 서울병원에 의료 선교사로서 숭고한 삶을 살아간 유제한 박사와 유은혜 여사의 생애를 기리기 위한 기념비가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