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91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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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菉山洞寧越嚴氏世居地 |
영어의미역 | Noksan-dong Yeongwol Eom Ancestral Village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사구 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상기 |
[정의]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에 있는 영월 엄씨 세거지.
[개설]
시조 엄임의(嚴林義)는 당나라 사람으로 신라 경덕왕 때 당나라 현종의 파락사(波樂使)로 영월 신씨(寧越辛氏)의 시조인 신시랑(辛侍郞)과 함께 우리나라에 왔다고 한다. 그러나 본국인 당나라에 정변이 일어나자 지금의 영월인 내성군에 안주하여 우리나라 엄씨의 시원이 되었다. 고려 때 엄임의를 내성군(奈城君)에 추봉하고 후손들에게 영월을 식읍으로 하사하면서 후손들이 영월을 세거지로 삼았다. 영월 엄씨(寧越嚴氏)는 시조 엄임의의 아들 엄태인이 파조인 군기공파, 엄덕인(嚴德仁)의 복야공파(僕射公派), 엄처인의 문과공파로 나뉘었고, 참봉공계·교수공계 등 37계통으로 갈라졌다. 강서구 녹산동 사구 마을 문중은 복야공파이다.
[명칭 유래]
녹산동의 사구 마을은 조만강(潮滿江) 변의 모래 언덕에 생겨난 마을로 일명 모래구지라고 한다. 모래구지는 옛날 홍수 때마다 서낙동강과 조만강이 함께 실어 온 모래가 금병산(錦屛山) 북쪽 끝에 부닥치면서 차츰차츰 사구(沙丘) 만(灣)에 쌓여 만들어진 것이다.
[형성 및 변천]
녹산동 영월 엄씨 세거지(菉山洞寧越嚴氏世居地)는 시조의 25세손 엄춘언(嚴春彦)이 정조 대인 1800년 초에 김해군 녹산면에서 사구 마을로 정착하면서 이루어졌다. 집안의 내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엄임의의 5세손 엄광(嚴光)은 은청광록대부 상서좌복야를 지냈고, 6세손 엄수경(嚴守卿)은 문하시랑 평장사였으며, 7세손 엄윤정(嚴允精)은 검교 군기감을 역임하였다. 18세 엄상중(嚴尙中)은 양산 군수이자 원종공신 일등이었고, 엄춘언의 둘째 아들 엄한석(嚴漢錫)은 철종 때 비서원 비서승(秘書丞)을 지냈으며, 엄한석의 아들 엄주신(嚴柱信)은 군부 주사(軍府主事)에서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올랐다. 엄주신의 손자 29세 엄노사(嚴魯士)는 행정 사무관을 지내는 등 명문 집안의 전통을 지켜 오면서 210여 년간 세거를 이루면서 살아왔다.
[자연 환경]
마을의 서쪽으로는 굴암산(屈巖山)에서 동으로 이어진 금병산(錦屛山)이 있고, 북쪽과 동쪽으로 조만강이 감싸 흐르며, 조만강 건너 동쪽에는 둔치도가 있다. 금병산의 북동쪽 끝단은 조만강이 동으로 흐르다가 남으로 곡류하는 지점으로 조만포가 있었다. 시가지는 금병산 자락과 조만강이 접하는 연변을 따라 길게 발달해 있다.
[현황]
녹산동 영월 엄씨 세거지 주변은 신항만 배후 물류 단지 공사로 개발되고 있다. 집안이 번성할 때는 15가구 가까이 살았으나, 2013년 현재는 6~7가구가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