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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9121
한자 國際市場-場-
영어의미역 Those who go shopping at the Gukje Market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생활사)
지역 부산광역시 중구 신창동 4가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조영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시설 국제 시장 - 부산광역시 중구 신창동 4가지도보기

[개설]

시장은 흥미로운 곳이다. 다양한 물건이 거래되는 장소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 우리네 시장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그 모습도 많이 변하였다. 그러나 그곳에 서린 온갖 삶의 애환은 세월이 흘러도 쉽사리 지워지거나 변하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고 융합하는 국제 시장. 국제 시장은 이제 부산을 찾는 여행객들의 필수 관광 코스이자 부산 사람들이 즐겨 찾는 전통 시장으로 손꼽힌다. 좁은 골목 길 사이사이에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 바로 국제 시장이다. 정감 넘치는 우리네 이웃들의 국제 시장과 함께한 세월을 따라 국제 시장 골목마다 숨은 이야기를 들어 보자.

[광복 후 형성된 도떼기시장]

1945년 8월. 일본의 패망과 함께 기세등등하였던 일본인들은 일본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부산으로 꾸역꾸역 밀려들었다. 귀국선을 기다리던 일본인들은 물건이 든 고리짝을 내다 팔았다. 고리짝 속에 무엇이 들어 있건 무조건 한 개에 5원씩 거래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말기 일본군은 미군 상륙에 대비하기 위하여, 중구 신창동창선동 일대[국제 시장 자리]를 공지, 즉 소개지(疏開地)로 조성하였다. 귀국하는 일본인들이 내다 판 이 고리짝들은 이들 공터에서 10원에 되팔렸다. 그러다가 일본인의 귀국이 뜸해지자 이번에는 귀환 동포들이 대거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광복 후 귀환 동포들은 이곳에 판자촌을 이루었다. 부산시 집계로는 이때 만들어진 판잣집만도 국제 시장 주변인 중구 대청동·영주동·보수동, 동구 초량동, 서구 남부민동 등의 1만 4,000동을 비롯하여 모두 2만 여 동이 들어섰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귀환 동포들은 일본에서 가져온 물건을 팔아 고향에 가는 노자를 마련하기도 하였는데, 이것을 계기로 조용하였던 이곳에 즉석 시장이 만들어졌다. 귀국하는 일본인과 귀환 동포들이 내놓은 물건을 두고 장사꾼들은 치열한 쟁탈전을 벌였다. 이때부터 이 시장을 ‘도떼기시장’이라고 불렀다. ‘도떼기’는 ‘취하다’라는 뜻의 일본어 ‘도리[取る]’에서 유래하였다. 1948년 사람들에게 나쁜 인상을 주는 도떼기시장을 자유 시장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

이후 미군이 주둔하면서 미군 부대 물건들이 시장에 넘쳐났고 미국산, 일본산, 국내산 물건이 한데 어우러져 거래되면서부터 ‘국제’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고 해서 아예 시장 이름이 국제 시장으로 바뀌었다.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나자 전쟁을 피해 이북에서 내려온 피란민들은 먹고 살기 위하여 이 시장으로 몰려들었다. 맨손으로 살길을 찾아야 하였던 피란민들은 길거리에 터를 잡고 노점을 차렸으며 이곳 토박이 상인들과 경쟁하며 억척스럽게 장사에 매달렸다. 1,000명 안팎에 지나지 않았던 도떼기시장 상인은 1·4 후퇴 직후엔 수만 명으로 불어나 그 수조차 파악할 수 없었다고 한다. 당시 국제 시장은 피란민들의 허기를 달래 주는 급식소이기도 하였다. 피란민들은 이곳에서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음식 찌꺼기를 모아서 한데 넣고 끓인 소위 꿀꿀이죽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기도 하였다.

[없는 것이 없는 국제 시장]

1950년대 국제 시장에서는 구하지 못하는 물건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물건을 갖추고 있었다. 미국 군수 물자와 6·25 전쟁 후 외국에서 보내 온 구호 물품,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각종 통조림, 홍콩과 마카오, 그리고 대마도 등지에서 밀수된 화장품·보석·시계·옷감 등 부산항으로 밀수입된 온갖 상품들이 이곳 국제 시장을 통하여 거래되고 전국으로 팔려 나갔다. 그로부터 70년이 지난 지금의 국제 시장은 그때와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 시절 5m 너비의 좁고 질척거렸던 국제 시장 길목은 아스팔트로 바뀐 지 오래다. 국제 시장 주변의 판잣집은 자취를 감추었고 대신 고층빌딩이 즐비하게 들어섰다.

세월 따라 국제 시장 상인들이 취급하는 상품도 많이 변하였다. 그러나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일명 깡통 시장이라 불리는 부평 시장에서는 여전히 수입 캔과 식료품이 팔리고 있다. 국제 시장은 긴 역사만큼이나 세대별로 서로 다른 추억을 가지고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넘쳐 나는 피란민들]

국제 시장은 최첨단 유행과 구닥다리 전통이 사이좋게 공존하는 곳이다. 부산은 항구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일본이 조선 침략의 전초지로 삼은 땅. 부산에서도 국제 시장, 중구 남포동과 광복동 일대는 가장 먼저 전깃불이 들어오고 도로가 놓이고 수돗물이 나왔다. 한때 이곳에는 은행과 관공서는 물론이거니와 사채 시장에 암달러상, 보따리상들로 넘쳐났다. 또 부산항을 통하여 들어온 군수 물자와 밀수품이 범람하던 이곳은 유행에 가장 민감한 곳이기도 하였다. 1960년대 전성기만큼은 아닐지라도 국제 시장과 이웃한 중구 남포동 극장가광복로는 지금도 여전히 유행의 첨단을 달린다.

1945년 광복과 함께 형성된 국제 시장은 7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한다. “6·25 전쟁 때 부산은 문자 그대로 혼란과 무질서와 가난의 도가니였다.”[이재윤 기자, 「6·25는 살아 있다」, 『경향 신문』, 1975. 6. 21] 6·25 전쟁 이후 부산에는 임시 수도가 자리하였고 물밀듯이 몰려드는 피란민들로 도떼기시장 일대는 말할 것도 없고 중구 신창동·창선동·대청동·부평동 일대까지도 발 들여 놓을 틈이 없을 정도로 노점 상인들로 들끓었다. 당시 국제 시장 상인들은 앙상한 루핑 지붕의 판잣집 점포에서 장사를 하였다.

[국제 시장과 깡통 시장의 애매모호한 경계]

일반적으로 국제 시장이라면 중구 신창동창선동 일대 그리고 부평동 일부를 합친 거대한 상권을 총칭한다. 1910년 조성된 부평 시장은 깡통 시장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6·25 전쟁 이후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통조림, 즉 깡통을 주로 거래하면서 깡통 시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원래 깡통 시장은 부평 시장 안에 있다. 부평 시장 깡통 골목이라 해야 맞지만 부산 사람들에게는 부르기 쉬운 깡통 시장으로 통한다. 그래서 지금은 부평 시장과 깡통 시장을 합쳐 부평 깡통 시장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부평 깡통 시장은 부산을 대표하는 음식 가운데 하나인 어묵을 비롯하여 유부 보따리[유부 전골], 단팥죽, 수수부꾸미 등의 먹거리로도 유명하다. 부평 깡통 시장을 찾는 사람들 가운데는 이들 먹거리를 맛보기 위하여 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국제 시장과 부평 깡통 시장은 부산에서 거래 규모가 가장 크고 오래된 재래시장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최대 도·소매형 종합 시장이다. 국제 시장에서는 다양한 생활용품을 시중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살 수 있으며, 부평 깡통 시장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수입 물품을 구매할 수 있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국제 시장]

“팔고 사고 우리들 생활과 하루도 떨어져 본 일이 없는 국제 시장, 이름 그대로 세계 각국의 물건 없는 것이 없는 민간 경제의 총 본산”[「부산 국제 시장」, 『동아 일보』, 1953. 8. 10]이라는 어느 신문 기사처럼 국제 시장에는 골목마다 빽빽하게 들어선 구제 가게와 다양한 상품, 다른 시장에선 볼 수 없는 수입 상품부터 심심찮게 들리는 외국어까지 정겹고도 낯선 풍경들이 즐비하다. 특히 부평 깡통 시장은 대형 마트나 백화점처럼 규격화되어 포장된 물건이 아니다. 할머니들이 길거리에 좌판을 깔고 파는 야채와 과일들은 소박하다 못하여 투박하다. 번잡스럽고 시끄러운 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산의 멋과 매력이 한데 녹아 있는 곳이 바로 국제 시장이다.

국제 시장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가 즐겨 찾는 우리네 재래시장이기도 하다. 또 볼거리와 먹거리로 가득하여 혼이 쏙 빠질 정도로 재미난 곳이다. 그 옛날 전쟁을 피해 이북에서 맨손으로 내려와 이곳 길거리에서 좌판을 펴고 억척스럽게 일하며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였던 피란민들의 굴곡진 세월을 뒤로한 채, 지금은 골목마다 미로처럼 늘어선 가게에 부산 사람은 물론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관광객, 그리고 외국인들로 넘쳐난다. 이곳에 무엇이 있기에 사람들은 국제 시장을 찾는 것일까?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국제 시장. 피란민들의 지난하고도 애달픈 인생살이가 녹아 있는 국제 시장, 그 속에서 우리는 부산을 지켜 온 우리네 이웃의 평범한 일상과 마주하게 된다.

꾸미지 않은 부산의 맨 얼굴을 보고 싶거나 부산의 옛 기억을 더듬어 보고 싶다면 국제 시장으로 가야 한다. 국제 시장은 인근의 중구 광복동남포동, 그리고 자갈치 시장과 더불어 부산의 원도심이다. 부산에서 최초로 도심지 역할을 하였던 이곳에는 부산의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골목들이 수도 없이 이어져 있다. 이 골목들 구석구석에는 우리네 이웃들의 사람 사는 냄새가 솔솔 풍긴다.

[국제 시장 골목에는 풍부한 먹거리가 있다]

성행자[울산광역시 중구 반구 2동 거주, 61세, 여] 씨는 지하철 자갈치역에서 내린 뒤 익숙한 듯 국제 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영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녀는 어려서부터 언니와 함께 자주 국제 시장에 놀러 왔다고 한다. 어렸을 때 언니 손을 잡고 오던 국제 시장은 그녀에게 단순한 시장이 아닌 추억의 공간이기도 하다.

“어릴 때 언니 손잡고 국제 시장에 자주 놀러왔었어요. 집이 영도다 보니까 가깝기도 하고, 버스 타고 와도 되지만 가까워서 걸어서 와도 되니 가끔 언니랑 걸어서 오기도 했어요. 국제 시장에 와서 우산도 사고 모자도 사고 그랬던 기억이 나요. 그리고 학창 시절에는 친구들과 여기 들러서 석빙고라는 아이스크림을 자주 사 먹었어요.”

현재 울산에 살고 있지만 아직도 종종 친구들과 함께 국제 시장을 찾는다는 그녀. 결혼 후 마산에 살고 있는 언니와는 가끔 울산도 마산도 아닌 이곳 국제 시장에서 만나 밥도 먹고 이곳저곳 둘러보며 필요한 것을 사기도 한단다. 성행자씨에게 국제 시장은 과거를 추억할 수 있는 공간이자 현재를 살아가는 공간이기도 하다.

“보통 깡통 시장에 도착하면 먹자골목에 들러서 먼저 식혜를 한 잔 사 먹고 쇼핑을 시작해요. 쇼핑을 하다가 허기가 지면 다시 비빔 당면을 사 먹죠. 지금은 비빔 당면 한 그릇에 4,000원이지만, 제가 어렸을 때는 비빔 당면 한 그릇에 1,500원 정도 했던 것 같아요.”

국제 시장과 나란히 마주 보고 있는 부평 깡통 시장에도 진기한 구경거리가 많다. 그중에서도 시장하면 먹거리가 빠질 수 없는데, 부평 깡통 시장 먹자골목에서 유명한 비빔 당면. 바다를 끼고 있는 항구 도시인 부산에는 전국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특별한 먹거리가 많다. 그중에서도 비빔 당면은 부산에서도 국제 시장이 아니면 먹어 볼 수 없는 특별한 음식이다. 비빔 당면은 고구마 전분 함량이 높은 당면을 다시마와 새우, 국물용 멸치로 우려 낸 육수에 탱탱하게 삶아 낸다. 고명으로 부산의 특산물이자 부평 깡통 시장의 특산물인 어묵과 부추, 그리고 달콤 짭조름한 단무지와 당근이 전부다. 여기에 고추장과 고춧가루, 간장을 버무린 매콤달콤한 양념장 한 숟가락을 얹고 마지막으로 고소한 참기름과 깨를 올려 쓱싹쓱싹 비벼 먹는다. 비빔 당면은 특별할 것 없는 재료로 만든 음식이지만 그 맛은 일품이다.

이제 부산 가서 비빔 당면 안 먹고 오면 후회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비빔 당면은 부산의 향토 음식이자 부평 깡통 시장의 유명한 먹거리가 되었다. 비빔 당면은 그 옛날 시장 상인들의 허기를 달래 주기 위하여 처음 만들어졌다고 한다. 시장 상인들의 허기를 달래 주던 이 음식은 이제 시장 상인은 물론이거니와 시장을 찾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고, 점차 입소문을 타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요즘 국제 시장을 찾는 관광객들 대부분은 꼭 부평 깡통 시장에 들러서 비빔 당면을 먹는다고 한다. 비빔 당면 한 그릇에는 당면과 몇 가지 재료가 만나 만들어 내는 소박한 시장의 맛과 함께 시장을 찾는 우리 이웃들의 추억과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매콤한 양념으로 맛을 낸 비빔 당면과 유부 전골[유부 보따리]은 찰떡궁합이다. 특히 슬슬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면 따끈한 어묵 국물에 당면으로 속을 꽉 채운 유부 보따리를 넣어 만든 유부 전골은 절대 지나칠 수 없는 부평 깡통 시장의 먹거리 가운데 하나다. “국제 시장에 오면 비빔 당면과 유부 전골은 항상 먹고 갑니다. 매콤한 비빔 당면과 따끈하고 칼칼한 국물에 담긴 유부 보따리 한 그릇이면 배가 든든해지거든요.”

부산의 먹거리 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부산 어묵’이다. 해물이 들어간 해물 맛, 매운 고추가 들어간 고추 맛까지 부평 깡통 시장에서는 다양한 재료와 모양으로 맛을 낸 신선한 어묵을 만나 볼 수 있다. 부평 깡통 시장을 찾는 많은 손님들은 집으로 돌아가기 전 이곳에 들러 한 봉지에 5,000원 또는 1만 원에 판매되는 모듬 어묵을 한 봉지씩 사 간다. 성행자씨 역시 부평 깡통 시장에 오면 꼭 이곳에 들러 어묵 한 봉지씩 사서 집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부평 깡통 시장에서 파는 부산 어묵은 일반 어묵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맛이죠. 해물 맛, 매운 고추 맛 등 모양도 맛도 다양하구요. 이렇게 한 봉지 사가서 냉동고에 보관해 두고 어묵이 먹고 싶으면 꺼내서 그때그때 탕을 끓여 먹곤 해요.”

또 하나 부평 깡통 시장에서 놓쳐서는 안 될 먹거리가 있다. 바로 인절미를 구워 팥죽에 얹어 먹는 일본식 단팥죽이 그 주인공이다. 겨울이면 호호 불어 가며 먹는 단팥죽 한 그릇은 부평 깡통 시장의 별미라고 할 수 있다. 부평 깡통 시장을 찾는 손님 중 상당수가 어머니와 함께 먹었던, 어릴 때 느꼈던 그 맛을 잊지 못하여 다시 찾아온다고 한다.

“부평 깡통 시장에 오면 예전에 먹던 먹거리들이 지금도 사라지지 않아 그대로 맛 볼 수 있어서 좋아요. 요즘 지역마다 전통 재래시장을 되살리기 위해 많이 노력하고 있다고 하는데, 적어도 이곳에 오면 여전히 활기가 느껴져서 좋아요. 대형 마트나 백화점도 좋지만, 부평 깡통 시장에는 이곳만의 숨은 매력이 참 많은 것 같아요.”

수입 물건을 에누리 없이 파는 것으로 유명한 부평 깡통 시장은 6·25 전쟁 당시 피란민들을 위한 생활필수품과 밀수품이 범람하여 일명 도떼기시장으로 불렸고, 지금도 의류, 식품, 포목, 잡화, 문구 등 갖가지 물건이 싼값에 팔리고 있다. 전쟁 통에 피란민의 생계 수단으로 형성된 한복 거리와 피란민들의 배고픔을 달래 주던 온갖 종류의 죽을 맛볼 수 있는 죽집 골목에는 아직도 커다란 솥에 호박죽, 녹두죽, 수수죽 등이 보글보글 끓고 있다.

[국제 시장 골목에는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부평 깡통 시장은 우리가 ‘시장’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에 가까운 시장이다. 언뜻 무질서한 듯하지만 깔끔하게 정돈 된 가게들 사이로 알록달록 파라솔이 자리한다. 파라솔 아래 좌판을 펴고 양말·스타킹·손수건 등을 파는 상인, 종이 상자에 아무렇게나 휘갈겨 쓴 “불타는 세일 모두 1,000원”이라는 홍보 문구, 한 푼이라도 깎아 보려 상인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손님들에 이르기까지 부평 깡통 시장은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시장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시장에 들어서면 분주하게 움직이는 시장 사람들, 주민과 관광객들이 뒤섞여 다양한 이야기를 쏟아 낸다.

부평 깡통 시장에는 먹거리면 먹거리, 과일이면 과일, 생선이면 생선, 고기면 고기, 주방 용품이면 주방 용품 등 없는 것이 없다는 말이 꼭 맞다. 지금은 부평 시장과 깡통 골목을 합쳐 부평 깡통 시장으로 부르고 있지만 사실 부평 시장은 먹거리로, 깡통 골목[즉 깡통 시장]은 다양한 수입 제품으로 더 유명하다. 깡통 시장에는 이른바 ‘미제’와 ‘일제’ 상품이 상점마다 가득하다. 특히 1970년대 한·일 수교 이후 이곳 국제 시장 상인들은 일제 밀수품을 팔아 한동안 재미를 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1980년대 시작된 정부의 해외여행 자율화 조치로 국제 시장은 한때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다.

부산항을 통해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일명 보따리 장사라 불리는 상인들 덕택에 깡통 시장에서는 일본에 가지 않고도 웬만한 일본산 제품은 다 만나볼 수 있다. 수입 과자, 커피, 사탕, 각종 음료 등을 판매하는 가게들이 몰려 있는 골목에 들어서면 꼭 어린아이마냥 눈이 즐거워진다. 예전에는 수입 과자들 가운데 대부분이 일본 과자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말레이시아, 태국, 베트남, 터키 등으로 다변화되어 더 다양한 국적의 과자를 깡통 시장에서 손쉽게 만날 수 있다. 가게 앞에 박스째 벌려 놓은 수입 과자 위에는 휘갈겨 쓴 “무조건 고르세요.”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단돈 1,000원이면 물 건너온 과자도 맛 볼 수 있으니 생각만으로도 횡재한 기분이랄까. 이곳에서 발길이 저절로 멈춰지는 것은 당연하다. 깡통 시장에서는 수입 과자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스나 술, 그리고 담배 등도 판매되고 있다. 단돈 만 원이면 맛있는 과자를 한 손 가득 살 수 있는 것도 이곳의 매력 가운데 하나다. 수입 과자를 판매하는 골목에서 만난 이연경[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동 거주, 31세, 여] 씨는 시간이 날 때면 이곳에 들러 평소 즐겨 먹는 수입 과자와 커피, 일본산 카레, 컵라면 등을 구매한다고 한다.

“깡통 시장이 마트보다 더 저렴한 경우가 많아요. 특히 일본 카레의 경우 마트보다 거의 50%는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어서 자주 찾는 편이에요. 그리고 가까이에 보수동 책방 골목도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들러서 책도 볼 수 있고, 근처 카페에서 커피도 한잔 할 수 있고……. 뭐 이런 게 이곳 국제 시장의 매력인 것 같아요.”

젊은 세대들이 깡통 시장을 찾는 이유가 수입 과자나 커피 등을 사기 위한 것이라면 나이가 좀 더 지긋하신 어머님들은 의류, 가방, 그릇, 주방 기기 등에 더 관심을 가진다. 부평 깡통 시장에는 수많은 옷집이 모여 있어서 여성복, 남성복, 유아복까지 다양한 종류의 옷을 구할 수 있다. 특히 까다로운 어머님들의 취향에 맞는 예쁜 옷을 어느 곳보다도 값싸게 살 수 있다. 여기에 말만 잘하면 더 저렴하게 살 수도 있다. 각종 액세서리, 신발, 가방, 머리 장신구, 심지어 속옷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다 구비되어 있다. 성행자씨 역시 깡통 시장에서 자주 옷을 산다고 한다.

“깡통 시장 옷은 디자인도 세련되었지만 무엇보다 가격이 싸서 좋아요. 그리고 여기서 산 옷을 입고 모임에라도 가면, 친구들에게 옷이 예쁘다는 칭찬을 많이 들어요. 옷이 예쁜데다 저렴하니까 더 자주 찾게 되는 것 같아요.”

성행자씨는 가끔 주변 사람들 부탁을 받고 깡통 시장에서 옷을 사다 주기도 한단다. 성행자씨가 깡통 시장에서 옷을 자주 구매하는 이유는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저렴한 가격에 세련된 디자인의 옷을 많이 살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녀는 국제 시장에서 옷 외에도 천연 염색약, 가방 등을 주로 구입한다. 성행자씨가 기억하기에 국제 시장은 외형적으로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 굳이 달라진 점을 꼽으라면 시장 천정을 아케이드 식으로 리모델링한 뒤 주변이 좀 더 깔끔하게 정돈되었다는 정도다. 그래서일까? 국제 시장 골목에는 오래된 세월만큼이나 진한 삶의 이야기가 구석구석 묻어난다. 골목 어귀마다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식당들은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도심 속 재래시장]

일명 깡통 시장이라고 불리는 부평 깡통 시장은 1910년에 형성되어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유서 깊은 시장이다. 이곳에는 부산시를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인 어묵을 비롯하여 단팥죽과 유부 보따리가 유명해서 이를 맛보려고 찾아오는 손님들로 늘 북새통이다. 부평 깡통 시장은 없는 게 없는 도심 속 재래시장이다. 시장 안에는 골목마다 굽고, 끓이고, 지지고, 볶는 냄새들로 넘쳐 나며 각종 풍성한 먹거리를 즐길 수 있다. 먹음직스럽게 가지런히 쌓여 있는 각종 튀김에서부터 온갖 종류의 반찬까지 그야말로 시장 골목 한가득 깊고 진한 음식 냄새가 진동한다. 이곳의 다양한 먹거리들은 시장을 찾는 주민과 여행객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그 냄새에 취하여 이것저것 먹다 보면 어느새 배가 불러 온다.

부평 깡통 시장은 언뜻 보기엔 여느 재래시장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 시장이 다른 재래시장과 구별되는 특별한 점이 있다. 바로 젊은이들과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는 것이다. 젊은 층과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하여 얼마 전 부평 깡통 시장은 와이파이 무료 서비스를 개통하기도 하였다.

국제시장로의 한편에 자리 잡은 부평 깡통 시장은 6·25 전쟁 당시 인근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깡통 통조림을 주로 거래하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깡통 시장에는 수입 과자, 주류, 화장품 외에도 앤티크 장신구와 고가구 등이 판매되고 있다. 그리고 국제시장로의 반대편에는 옷, 기계, 전자 제품류 등을 파는 도매 시장인 국제 시장과 족발 골목, 먹자골목, 꽃 골목 등이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부평 깡통 시장과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국제 시장을 합쳐서 국제 시장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넓은 범주에서 보면 국제 시장은 부평 깡통 시장을 포함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부평 깡통 시장은 수입 제품을 주로 취급하다 보니 자연적으로 국내 관광객이 주요 고객이라면, 국제 시장은 외국인, 그중에서도 일본인 관광객이 많이 찾고 있다. 미로 같은 골목과 독특한 물건을 많이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중국 관광객에게도 인기가 많다. 그래서인지 국제 시장이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이곳 국제 시장에서는 영어, 일본어, 중국어가 함께 쓰여 있는 간판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국제 시장 일대에는 오랜 세월 동안 자연스럽게 형성된 골목이 즐비하다. 미로처럼 얽힌 골목들은 저마다 개성을 지니고 있다. 전자 골목, 안경 골목, 부품 골목, 구제 골목, 먹자골목, 족발 골목, 팥빙수 팥죽 골목, 조명 골목, 가방 골목, 그릇 골목……. 이들 골목에는 볼거리와 먹거리, 그리고 즐길 거리로 가득하다.

[전자 골목의 옛 추억]

국제 시장의 전자 상가 골목, 불과 십오 년 전만 해도 일제워크맨이나 코끼리 밥솥, 외제 면도기 등을 사기 위하여 시장을 찾는 사람들로 활기를 띠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시장 골목이 한산하다. 한때 남부럽지 않은 전성기를 누렸던 이곳 전자 상가 골목은 디지털 시대의 등장과 함께 어느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1990년대 ‘워크맨’이라고 불리던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나 휴대용 시디플레이어는 젊은이들의 필수품 가운데 하나였다.

당시엔 지금처럼 음악 파일을 내려 받는다는 개념도 없던 시절이다. 지금이야 스마트폰, 엠피스리(MP3) 등으로 언제 어디서나 쉽게 노래를 들을 수 있지만, 그 시절 워크맨은 청소년들이라면 누구나 갖고 싶은 최고의 기기였다. 요즘 청소년들은 당시의 워크맨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상상이 잘 안 될 것이다. 비록 성능이 지금의 MP3에는 비교도 안 되지만, 예전에는 워크맨 하나만 있으면 부러울 게 없었던 시절이었다. 워크맨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중·고교생 입학과 졸업 선물의 대표 주자였을 정도로 인기였다. 일본 전자 제품이 잘나가던 시절, 전자 상가 골목 역시 덩달아 호황이었다. 국제 시장 전자 골목에서 판매되던 외제 전자 제품은 일명 보따리상이라 불리는 아주머니들이 직접 배를 타고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들여온 물건이 대부분이다.

“한때 일제코끼리 밥솥이 어머니들 사이에 한창 인기였죠. 그때 친구들과 일본 여행에서 돌아오는 배에서 옆에 앉으신 보따리상 아주머니에게 부탁 받고 코끼리 밥솥을 들고 세관을 통과한 적도 있어요.”[제갈수정, 부산광역시 금정구 남산동 거주, 33세, 여]

지금은 추억 속으로 사라진 워크맨. 하지만 한때 워크맨에 열광하였던 시대가 있었고 그때 이곳 국제 시장 전자 골목은 각지에서 모여드는 손님들로 발을 디딜 틈도 없었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을 이길 수는 없는 법이다. 이제 일제워크맨을 사기 위하여 이곳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지금 이 골목에서는 그때를 회상해 보기도 힘들 만큼 손님들의 발길은 뜸해졌다. 하지만 당시의 아련한 추억만은 그대로 남아 이곳을 지나는 손님과 여행객들에게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전자 골목에서 만난 조효정[부산광역시 북구 덕천동 거주, 33세, 여] 씨도 학창 시절 이곳에서 워크맨을 샀다고 한다. 그녀는 당시 조금이라도 더 마음에 드는 제품을 사기 위하여 이 가게 저 가게를 돌아다니며 고민하고 또 고민하였다고 한다.

“학창 시절 학교 가는 버스 안에서 항상 워크맨으로 노래를 들었죠. 특히 지루한 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는 선생님 몰래 워크맨으로 라디오도 자주 들었어요. 그 당시 여기 국제 시장에 오면 소니나 파나소닉워크맨을 저렴하게 살 수 있었어요. 종류도 다양할 뿐만 아니라 여러 가게가 이 전자 골목에 집중되어 있어서 가격 비교도 할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아요. 여기 오니까 예전 학창 시절 생각도 나고 그래요…….”

[무조건 천 원!]

국제 시장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구제 골목이다. 구제 골목은 값비싼 쇼핑가와 달리 가벼운 호주머니로도 마음껏 쇼핑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구제 골목에서는 사람들이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산더미처럼 쌓인 옷에서 열심히 옷을 고르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마치 보물찾기라도 하는 것마냥.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 부러져 있는 옷이지만 제대로 고르기만 한다면 진정한 보물이 될 수 있는 옷들이다. 가격은 단돈 천 원! 국제 시장 구제 골목에서는 과자 한 봉지 가격으로도 옷을 살 수 있다. 미국, 캐나다, 일본 등 각지에서 구제가 도착하는 날이면 이곳 구제 골목에는 손님들로 시끌벅적하다.

구제 골목은 오래전부터 이곳을 찾는 중·장년층 단골들이 많다. 구제 골목에 들어서면 익숙한 듯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숨은 진주를 찾기 위하여 열심인 어머니들을 만날 수 있다. 구제 골목은 골목 가득 모두 구제 옷 가게다. 거미줄같이 얽혀 미로와 같은 국제 시장 구제 골목은 이곳을 자주 찾는 사람들도 헤매기 일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0~60개의 구제 옷 가게가 밀집해 있어 많은 마니아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구제 골목에서 만난 제갈정화[부산광역시 사하구 괴정동 거주, 36세, 여] 씨는 중구에서 가까운 동구에서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이 때문에 그녀는 학창 시절부터 국제 시장에 자주 놀러왔었다. 그리고 가끔 엄마를 따라 구제골목에 와서 옷을 사기도 하였다고 한다.

“굳이 무엇을 사야 해서 국제 시장을 찾는 것은 아닙니다. 가끔 친구들과 남포동에서 만나는데 그러면 어김없이 이곳 국제 시장에 들러서 이 골목 저 골목 돌아다녀요. 국제 시장은 골목마다 특색이 있어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해요. 처음에는 천 원, 이천 원짜리 옷이 있다는 게 신기해서 자주 찾게 되었어요. 꼭 보물찾기 하는 것 같아요. 국제 시장은 대형 쇼핑몰과는 느낌이 다르잖아요. 실핏줄 같이 늘어선 골목이 투박하지만 정감이 넘치는 것 같아서 좋아요.”

[시대 따라 달라지는 모습]

구제 골목 1층에 자리한 구제 옷 가게는 중·장년층에게 인기가 있다. 요즘은 구제골목을 찾는 관광객들의 인기에 힘입어 월세가 비교적 저렴한 2층 또는 지하에 젊은이들이 주로 찾는 빈티지 숍이 많이 생겼다. 특히 골목 구석구석에서 수입 빈티지 숍들을 만날 수 있다. 이들 개성 강한 빈티지 숍이 국제 시장에 자리 잡으면서 이곳은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빈티지 패션의 메카로 통한다. 덩달아 전국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의 발길도 잦아졌다. 신도시 상권에 밀려 한때 주춤하던 국제 시장이 다시 활기를 찾고 있는 것이다. 구제 골목을 나와 이웃한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빅 사이즈 전문 옷 가게가 나타난다. 이곳에서는 빅 사이즈의 옷과 신발을 다양하게 구입할 수 있다.

광복 직후 자국으로 돌아가야 했던 일본인들이 물건을 내다 팔기 위하여, 그리고 귀환 동포들이 고향에 갈 여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생필품을 내다 팔면서 형성된 시장이 지금의 국제 시장이다. 이 때문에 국제 시장은 6·25 전쟁 당시 미군 부대나 일본에서 들여온 물건들로 넘쳐 났던 곳이기도 하다. 이제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통조림이나 일본인들이 자국으로 돌아가면서 내다 팔던 물건은 더 이상 보이지 않지만 국제 시장은 여전히 부산을 대표하는 전통 재래시장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보는 재미에 먹는 즐거움까지]

구제 골목을 빠져 나오면 국제 시장 먹자골목이 나타난다. 국제 시장은 골목골목 맛집들이 그득하다. 그중에서도 먹자골목을 가득 뒤덮은 노점상은 빼놓을 수 없는 구경거리다. 먹자골목은 비빔 당면, 충무 김밥, 국수 등을 판매하는 아주머니들이 펼친 노점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곳은 골목 가득 앉은뱅이 의자에 옹기종기 앉아 충무 김밥과 비빔 당면을 맛보는 관광객들로 진풍경을 이룬다. 충무 김밥에 깍두기와 양념에 버무린 어묵, 오징어무침을 얹어 먹으면 그 맛은 정말 끝내준다. 먹자골목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서 비빔 당면에 충무 김밥을 먹다 보면 옛 추억이 폴폴 되살아남을 느낄 수 있다.

골목이라면 팥빙수 팥죽 골목도 빼놓을 수 없다. 국제 시장에서 빠질 수 없는 또 한 가지 먹거리가 바로 팥빙수이기 때문이다. 국제 시장은 골목마다 골목 특성에 맞는 제 이름이 있다. 가방 골목, 갈비 골목, 그릇 골목, 꽃 골목, 먹자골목, 문구 거리, 보세 골목, 부속 골목, 신발 골목, 안경 골목, 전자 골목, 조명 골목, 족발 골목 등이 그것이다. 같은 골목에서 같은 음식 또는 물건을 다루는 상점들이 집결하여 인기를 누리는 곳이다. 먹자골목, 족발 골목, 팥빙수 팥죽 골목 등에는 같은 음식을 다루는 가게가 밀집해 있다. 국제 시장 주변은 먹거리 천국이다. 먹거리도 많고 먹어 봐야 할 것들도 많다.

그중에서도 여름이면 지나칠 수 없는 것이 바로 팥빙수 골목의 팥빙수다. 커다란 얼음 덩어리를 빙삭기에 올리고 동그란 손잡이를 돌리면 드르륵드르륵 얼음 가는 소리와 함께 눈처럼 새하얀 고운 얼음 가루가 그릇에 소복이 쌓인다. 그 위에 단팥과 후르츠 칵테일 또는 과일 잼을 듬뿍 올려 주면 국제 시장의 명물 팥빙수가 완성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팥빙수는 맛도 맛이지만 만드는 모습이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옛날 팥빙수처럼 참 소박하고 정겹다.

그 옛날 피란민들의 굶주린 배를 채워 주던 음식이 이제는 관광 상품화가 되어 국제 시장을 찾는 여행객들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 국제 시장이 가진 이런 투박하지만 정겨운 매력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국제 시장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직도 국제 시장 구석구석에는 한국 현대사의 질곡과 피란민들의 삶의 애환이 짙게 배어 있다.

“금순아 어디로 가고 길을 잃고 헤매었던가, 피눈물을 흘리면서 1·4 이후 나 홀로 왔다.” 그 시절 모든 국민의 심금을 울렸던 이 노래의 가사는 당시 국제 시장의 정경을 그대로 보여 준다.

[참고문헌]
  • 인터뷰(부산광역시 북구 덕천동 주민 조효정, 2013. 8. 28)
  • 인터뷰(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동 주민 이연경, 2013. 8. 28)
  • 인터뷰(부산광역시 금정구 남산동 주민 제갈수정, 2013. 9. 3)
  • 인터뷰(울산광역시 중구 반구2동 주민 성행자, 2013. 9. 3)
  • 인터뷰(부산광역시 사하구 괴정동 주민 제갈정화, 2013.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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