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75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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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中洞尾浦-仁同張氏世居地 |
영어의미역 | Residential Place of Indong Jang Clan in Jung-dong Mipo Village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동 미포 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주영택 |
[정의]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동에 있는 인동 장씨 세거지.
[개설]
인동 장씨(仁同張氏) 시조는 고려 전기 삼중대광 신호위 상장군을 지낸 장금용(張金用)이다. 그로부터 현재 40세까지 세계가 이어진다. 조선 시대에 들어 인동 장씨는 정승 1명, 왕비 1명, 문과 급제자 141명을 배출하였다.
[명칭 유래]
중동 미포 마을은 미포(尾浦)에 자리하고 있어 붙여진 지명이다. 미포는 해운대 동북쪽에 자리 잡은 와우산(臥牛山)[높이 183m로 장산에서 내려다보면 소가 누워 있는 것같이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의 꼬리 부분에 해당하는 갯가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미늘, 미암(尾巖)이라고도 불렀다.
[형성 및 변천]
1500년경 장순(張純)[10세]이 울주군 언양에서 해운대 미포 마을에 이거하여 입향조가 되었다. 1664년(현종 5) 장기석(張基錫)이 ‘유학 진사’의 교지를 받아 인동 장씨 문중의 세거를 떨쳤다. 동래 향교(東萊鄕校)와 안락서원(安樂書院)에 출입하여 향교장의 장영석(張永錫), 도유사 장성준(張聲駿), 안락서원 서원장 장무준(張武俊)을 배출하였다.
[자연 환경]
중동 미포 마을은 와우산 서쪽에 자리하며, 남쪽은 바다와 접한다.
[현황]
2013년 현재 중동 미포 마을에는 인동 장씨 10여 가구가 살며, 해운대구 수영구 일대에 15가구가량이 거주하고 있다. 1993년 인동 장씨 남산파 해운대 문중에서 와우산 기슭에 재실인 옥운재(玉雲齋)를 건립하였다. 매년 음력 10월 10일에 향사를 지내며, 후손 40여 명이 참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