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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산동 밀양 손씨 세거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7411
한자 菉山洞密陽孫氏世居地
영어의미역 Noksan-dong Milyang Son Ancestral Village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녹산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상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세거지
가구수 18가구
세거지 녹산동 밀양 손씨 세거지 -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녹산 마을

[정의]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에 있는 밀양 손씨 세거지.

[개설]

손씨(孫氏)는 신라의 개국 공신인 6부 촌장 중에 대수촌장 구례마(俱禮馬)를 득성 시조로 한다. 밀양 손씨(密陽孫氏)구례마의 후손인 문효공 태자사 손순(孫順)을 시조로 하는데, 손순월성군 진천읍 모량리 출신으로 효행이 지극하여 신라 제42대 흥덕왕(興德王) 때 월성군(月城君)에 봉해졌다. 월성군 손순의 손자인 3세 손익감(孫翼減)이 공을 세워 응천군(凝川君)[밀양]에 봉해졌다. 손익감을 중시조로 관향(貫鄕)을 밀양으로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4세 손응상(孫應尙)이 병부 상서로 문열공(文烈公)이 되었고, 5세 손연조(孫連祖)는 삭방(朔方) 천호(千戶)를 거쳐 병부 상서를 지냈으며, 6세 손도명(孫道明)은 병부 상서가 되는 등 고려 시대 대대로 명문 무가(武家)를 이루었다.

[명칭 유래]

녹산(菉山)은 원래 ‘사슴 녹(鹿)’ 자를 쓰는 녹산(鹿山)이었다. 굶주린 한 마리 사슴이 푸른 들을 향해 내리뛰는 모습의 기록 주야형(飢鹿走野形)의 명당자리라 하여 붙여진 것이다. 1714년 녹산 마을산양 마을, 성산 마을을 합하여 녹산리(菉山里)라 하면서 한자 표기가 바뀌었다.

[형성 및 변천]

입향조인 28세 손세립(孫世岦)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합천 마진(馬津) 전투에서 공을 세우고 전사한 증(贈) 병조 판서(兵曹判書) 24세 손인갑(孫仁甲)의 증손 손이국(孫利國)의 아들이다. 손이국의 아들 가운데 손세립의 손위인 손흥립(孫興笠)은 밀양으로, 1670년경 동생 손세립은 녹산으로 세거를 옮겼다. 손흥립의 후손 중 33세 손계환(孫啓煥)[1794~1864]은 정3품 절충장군(折衝將軍)으로 봉해졌다. 이후에 강서구의 다른 마을로 일부 이거하였다.

[자연 환경]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은 동쪽으로 서낙동강과 접해 있으며, 북쪽에 위치한 봉화산 일대의 산지를 제외하고는 서낙동강의 퇴적 작용으로 이루어진 평야 지역이다. 서낙동강 하구에는 노적봉[서낙동강 하구의 기반암으로 이루어진 작은 섬으로 임진왜란 때 왜군이 쳐들어오자, 섬 전체를 짚으로 덮어 노적더미처럼 위장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 있다. 마을 앞에 염전이 있었다고 한다.

[현황]

녹산동 밀양 손씨 세거지(菉山洞密陽孫氏世居地)는 마을의 농토인 앞들이 화전 산업 단지가 되어 지금은 도시화되고 있다. 한때 강서구 녹산동 녹산 마을에 15가구, 성산 마을에 6가구, 신촌 마을과 화전 마을에 각 3가구씩 살았으나 2013년 현재 녹산 마을 7가구, 화전 마을 3가구, 산양 마을 4가구, 성산 마을 4가구가 살고 있다. 손계환의 종손인 38세 손태수(孫泰壽)가 이러한 자료를 제공해 주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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