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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동 밀양 박씨 세거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7400
한자 大渚洞密陽朴氏世居地
영어의미역 Daejeo-dong Milyang Bak Ancestral Village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상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세거지
세거지 대저동 밀양 박씨 세거지 -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동

[정의]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동에 있는 밀양 박씨 세거지.

[개설]

박씨(朴氏)의 세계(世系)는 박혁거세(朴赫居世)의 증손인 신라 제5대 파사왕(婆娑王)과 제7대 일성왕(逸聖王)에서 갈라졌는데, 파사왕 계보는 뒤에 영해·면천·강릉 등으로 분관하였고, 비안·우봉(牛峰)·이산(尼山)·해주(海州) 등으로도 갈라져 나왔다. 한편 일성왕 계보는 25세인 신라 제54대 경명왕(景明王)과 제55대 경애왕(景哀王) 대에서 다시 갈라졌다.

경명왕계는 아들 9형제에서 각기 첫째 아들 박언침의 밀성 대군파(密城大君派)[밀양 박씨·반남 박씨·진원 박씨 등], 둘째 아들 박언성의 고양 대군파(高陽大君派)[고령 박씨], 셋째 아들 박언신의 속함 대군파(速咸大君派)[함양 박씨·삼척 박씨 등], 넷째 아들 박언립의 죽성 대군파(竹城大君派)[죽산 박씨·음성 박씨·고성 박씨], 다섯째 아들 박언창의 사벌 대군파(沙伐大君派)[상주 박씨·충주 박씨], 여섯째 아들 박언화의 완산 대군파(完山大君派)[전주 박씨·무안 박씨], 일곱째 아들 박언지의 강남 대군파(江南大君派)[순천 박씨·춘천 박씨 등], 여덟째 아들 박언의의 월성 대군파(月城大君派)[경주 박씨의 8대군파], 아홉째 아들 박교순(朴交舜)의 국상공파(國相公派)[울산 박씨]로 분파되었다. 한편 경애왕 계보는 계림 대군파(鷄林大君派)를 이루었다.

부산광역시 강서구에 입향한 밀양 박씨 집안은 판도판각공파[전에는 판도공파라고 하였음]로, 시조는 박천익(朴天翼)이다. 박천익은 시조 박혁거세의 37세손이며, 밀성 대군의 8세손이다.

[명칭 유래]

강서구 대저동대저도(大渚島)에서 그 지명이 유래하는데, 이는 서낙동강 어귀에 큰 모래톱으로 형성되어 있는 큰 섬이라는 의미를 함축한다. 출두리(出頭里)는 맨 웃머리에 있다고 붙여진 이름이며, 대저도에서 가장 먼저 비옥한 토지가 형성되어 사람들이 살게 된 곳이라고 한다.

[형성 및 변천]

밀양 박씨 판도판각공파 파조 박천익(朴天翊)의 20세 후손인 박이명(朴而明)이 정5품 통덕랑(通德郞)으로 재임할 때인 1670년경 강원도 강릉에서 김해 상동면 소감리로 피난을 왔다. 박이명의 아들 21세 방광신(朴洸臣)은 통훈대부 군자 감정을 증직받았다. 입향조인 손자 22세 박문성(朴文晟)이 통정대부 공조 참의를 증직받고 대저도 개발에 참여하여 1720년경 출두리 번덕에 정착하였다.

증손자 23세 박수언(朴守彦)은 가선대부 한성 부윤을 증직받았다. 고손자 박영윤(朴永潤)은 통정대부 겸 숭정대부로 동지중추부사를 지냈고, 현손 박성점(朴成點)은 통덕랑에 올랐으며, 박영운의 아우 박계윤은 통정대부, 손자 26세 박남수(朴南秀)도 통정대부를 지내는 등 집안이 누대(累代)를 내려오면서 관록(官祿)이 이어진 명문 집안으로, 290여 년간 세거를 이루어 왔다.

[자연 환경]

대저동은 낙동강 하구 충적 토사로 이루어진 하중도로 토질이 비옥하여 일찍부터 농토가 이루어진 농산물이 잘되는 풍요로운 땅이었으나 낙동강 중심에 있어 한동안 수해로 여러 차례 수몰을 당하기도 하였지만, 지금은 도시 근교 농촌으로 살기 좋은 곳이다.

[현황]

대저동 밀양 박씨 세거지에 규정공파가 합류하여 정착하면서 한동안 번창할 때는 60여 가구가 넘게 살았으나, 2013년 현재 젊은 사람들이 도시로 진출하여 인근 마을까지 합하여도 20여 가구가 안 되는 형편이다. 규정공파는 16세손 절충장군 박영례(朴榮禮)의 손자 박기흥(朴技興)이 1810년경 경상북도 안동에서 이곳으로 내려와 정착하면서 그 후손들이 판도판각파 후손들과 같이 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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