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73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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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多大洞淸州韓氏世居地 |
영어의미역 | Residential Place of Cheonju Han Clan in Dadae-dong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사하구 다대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한건 |
[정의]
부산광역시 사하구 다대동에 있는 청주 한씨 세거지.
[개설]
청주 한씨(淸州韓氏) 시조 한란(韓蘭)[?~?]은 고려 태조(太祖)가 후백제의 견훤(甄萱)을 정벌하기 위해 청주를 지날 때 군량미를 도와 삼한 통합에 공이 있으므로 개국 벽상공신으로 삼중대광 태위(三重大匡太尉)에 올랐다. 한란이 청주 방정리에 세거하였기 때문에 후손들이 청주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 왔다.
[명칭 유래]
다대(多大)의 명칭 유래는 명확히 알려진 바가 없으나, 큰 포구가 많은 바다라는 데서 유래된 지명으로 추측한다.
[형성 및 변천]
다대동 청주 한씨는 1720경 지금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반룡리에서 이주하여 정착한 집안이다. 입향조는 한도남이다. 입향조 이후 3대째인 1754년(영조 30) 한광국(韓光國)[본명 한인범]이 다대진 관리로 등용됨에 따라 가세가 확장된 이후 사하 지역에서 다수의 인재를 배출하였다. 한광국은 다대진 관리로 있으면서 어민들이 천민 취급당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진정을 중앙 정부에 올려 1763년(영조 39) 8월 어민을 상민으로 복권시킨다는 허가를 받아 낸 우리나라 최초의 민권 운동가로, 그 공덕을 기리는 불망비가 다대포에 남아 있다.
다대동 청주 한씨는 유명 인물을 다수 배출하였는데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다. 한경범(韓璟範)[1826~1913]은 한광국의 사촌 동생 후손으로 1902년 현 다대초등학교 전신인 다대사립실용학교를 설립한 교육자이며 선각자이다. 한오동(韓㻍東)[1894~1963]은 일제 강점기 사하 면장[현 구청장에 해당]을 지내면서 사하 주민들의 정신 개혁과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다대사립실용학교가 폐교 위기에 처하자 이를 구해 낸 인물이다. 한상동(韓尙東)[1901~1978]은 고려신학대학 출신의 개신교 목사로 일제 강점기 신사 참배를 거부하여 종교 지도자로서 신념을 굽히지 않은 점은 지금도 높이 칭송되고 있다.
[자연 환경]
다대동은 다대 반도 남단과 두송 반도의 서남단에 위치한다. 북쪽에는 아미산이 있고 서쪽은 낙동강 하구이며 남쪽으로 다대만이 있다. 낙동강 하구의 퇴적 작용에 의해 형성된 백합등이 동의 서쪽에 위치하며, 남쪽으로 쥐섬과 솔섬을 비롯한 작은 바위섬이 있다. 다대 반도 남서쪽으로는 사빈 해안이 발달하여 다대포 해수욕장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그 남쪽 끝에는 몰운대가 있다. 몰운대는 본래 섬이었으나 사주의 발달로 육지와 연결된 육계도이다.
[현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