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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여동 삼어 마을 여산 송씨 세거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7369
한자 盤如洞三魚-礪山宋氏世居地
영어의미역 Residential Place of Yeosan Song Clan in Banyeo-dong Sameo Village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여동 삼어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주영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세거지
가구수 2가구
세거지 반여동 삼어 마을 여산 송씨 세거지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여 4동 삼어 마을

[정의]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여동에 있는 여산 송씨 세거지.

[개설]

당나라에서 호부 상서를 지낸 송주은(宋柱殷)의 7세손인 송자영(宋自英)이 아들 셋을 두었는데, 그중 첫째 아들 송유익(宋惟翊)이 여산 송씨(礪山宋氏) 시조다. 송유익은 고려 숙종(肅宗) 때 진사를 지내고 나라에 공을 세워 여산군에 봉하여졌으며, 은청광록대부 추밀원 부사(銀靑光祿大夫樞密院副使)에 추증되었다. 그 아들 송숙문(宋淑文)은 원종(元宗) 때 문하시중으로서 여량(礪良)[여산] 부원군에 봉하여졌다. 여산 송씨 시조의 묘는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호산리 산4번지 문수동에 있다. 5세손 송염(宋琰)과 송분(宋玢)의 아들 대에서 세도 가문을 이루면서 여러 파로 갈린다. 반여동 상리 마을 여산 송씨 집안은 송염의 후손들이다.

송염의 다섯 형제 가운데 첫째인 송운(宋惲)은 원윤공파(元尹公派)를 이룬다. 송운의 네 아들 중 넷째 아들이 송장경(宋長卿)이고, 송장경의 아들이 송극명(宋克明)이다. 송극명은 동주공(東洲公)으로 동래 입향조다. 송극명은 수양 대군(首陽大君)이 단종(端宗)의 왕위를 빼앗으려고 하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의로 벼슬을 버리고 1454년경 동래 회동동 보덕산 기슭에 와 동대(東臺)동천(東川)에서 시와 낚시로 여생을 보냈다.

송극명의 아들 9세 송윤희(宋允熹)에게는 아들 여섯 명이 있었는데, 송승서(宋承緖), 송승효(宋承孝), 송승한(宋承翰), 송승보(宋承寶), 송승륜(宋承輪), 송승원(宋承源)이었다. 이들 후손들이 대대로 동래 지방에 세거하며 동래 향청과 향교의 주요 직책을 맡아 동래 지역민을 위해 많은 역할을 하였다.

[명칭 유래]

반여동은 지형이 소반(小盤)[작은 밥상]처럼 동그랗다는 풍수설의 영향으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삼어 마을은 ‘석 삼(三)’에 ‘물고기 어(魚)’ 자를 쓰는데, 봄이면 누런 빛깔의 황어가 지천이고, 여름이면 수박 향이 나는 은어가 올라오며, 가을이면 거대한 연어가 찾아와 붙여진 지명이라고 한다.

[형성 및 변천]

송윤희의 아들 중 셋째인 송승한이 회천파(回川派)로 반여 4동 삼어 마을에 입향하였다. 이후 16세손 송규회(宋奎會)가 1750년경 고을 향수(鄕首)로 회천에 복택하였다. 현재 삼어 마을에 사는 여산 송씨는 원윤공파 동주공 규회파이다. 송규회의 아들인 17세손 송광적, 송광제, 송광순 3형제가 문학과 행의(行義)로 이름났다. 송광적은 동래 온정 개건비(溫井改建碑) 글씨를, 동생 송광제는 방대한 「내주 축성비기(萊州築城碑記)」 글씨를 썼으며, 셋째인 송광순영조(英祖) 대에 동래 부사 정언섭(鄭彦燮)이 동래읍성을 수축할 때, 축성한 동기와 참여 명단 및 재정 비용 등 구체적인 축성 사적(築城事蹟)을 기록하였다.

[자연 환경]

반여동 동쪽에 위봉에서 남서쪽으로 뻗은 산줄기가 자리하며, 서쪽으로 수영강이 흐른다. 마을은 하천변의 평지에 자리하고 있다.

[현황]

2013년 현재 반여동 삼어 마을에는 여산 송씨 2가구만 살고 있다. 규회파 문중 재실은 영모당(永慕堂)으로 1988년 건립하여 279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향사일은 음력 10월 둘째 일요일이며, 참석자는 50여 명이다. 영모당의 문회장은 송동록(宋東祿)으로, 재단법인 충렬사 안락서원 이사장이자 부산광역시 무형 문화재 제5호인 「충렬사 제향」 알자(謁者) 기능 보유자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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