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73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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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龍湖洞金寧金氏世居地 |
영어의미역 | Yongho-dong Gimnyeong KimClan hometow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남구 용호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영진 |
[정의]
부산광역시 남구 용호동에 있는 김녕 김씨 세거지.
[명칭 유래]
용호동은 조선 시대에 분개라고 불렀던 곳이다. 분개가 용호동으로 바뀐 것은 일제 강점기 일본인이 이곳 염전을 수탈하고 통감부에서 이곳에 ‘시험 제염 용호 출장소(試驗製鹽龍湖出張所)’를 설치한 때를 전후한 시기로, 인근 용당동 이름을 참고하여 큰 염전의 호수라는 뜻으로 이름 지었다.
[형성 및 변천]
용호동 김녕 김씨(金寧金氏) 입향조인 김원실(金元實)은 임진왜란 전 용호동으로 들어왔다. 그는 봉사공파(奉事公派) 13세손으로 정3품 통정대부 절충장군으로 임진왜란 때 부산 다대포 방어에 참전하여 순국하여 가선대부 호조 참판에 증직되었다. 부인은 단성 최씨(丹城崔氏)인데 합폄(合窆)되어 용호동 뒷산에 묻혀 있다. 김원실은 사정(射亭)을 두어 평소에 활쏘기를 하며 무예를 닦았으며, 그 때문에 지금도 ‘사정터’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후손 김희준(金希準)[1868∼?, 자 댁유(宅有)]에게 내려진 통정대부 교지와 그 부인에게 내려진 숙부인(淑夫人) 교지가 전한다. 김원실의 자손들로 동래 향교(東萊鄕校) 유계원(儒契員)으로 기록된 김희준, 김세은(金世殷)[1863년생, 자 진현(振賢)], 김영철(金永哲)[1898년생, 자 영서(永瑞)] 등이 있다.
[자연 환경]
용호동의 산세는 동쪽으로 장산봉이 방파제 구실을 하고, 서쪽으로 비룡산이 담장 처럼 용호동을 감싸 주며, 북쪽 해안은 천연의 분개 포구를 만들어 장구한 세월 동안 천일제염의 생산지였다. 남쪽은 백운포가 남해 바다와 접하며 용마산 줄기가 ㄴ자 모양으로 방파제 구실을 하여 해풍을 막아 준다.
[현황]
1904년 발간된 『경상남도 동래군 가호안』에는 용호동에 김녕 김씨 8가구가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2013년 현재는 용호동과 부산 지역 전체에 60가구 정도가 거주하고 있다. 원래 용호중학교 교지(校地)가 문중 선산이었으나 학교 터로 수용 당하자 묘소를 이전하였다. 학교 옆 산에 문중 재실인 사정재(射亭齋)를 짓고 그 옆에 입향조 묘소를 이장하여 매년 제향을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