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72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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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鷲井寺妙法蓮華經 |
영어의미역 | The Saddharma Pundarika at Chijeonsa Temple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상곡길 55[용천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재혁 |
[정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용천리 취정사 에서 소장하고 있는 『묘법연화경』.
[개설]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뜻을 밝히는 데 그 요지를 두고 있는 『묘법법화경(妙法蓮華經)』은 법화 사상(法華思想)을 담고 있는 천태종(天台宗)의 근본 경전임과 동시에 한국 불교의 근본 경전의 하나이다. 흔히 『법화경(法華經)』으로 불리며, 『화엄경(華嚴經)』, 『금강경(金剛經)』과 더불어 불교의 대표적 대승 경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 의미는 ‘흰 연꽃과 같이 올바른 가르침을 주는 경전’으로 풀이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목판으로 간행된 가장 오래된 『묘법연화경』은 최근 전라남도 영광의 불갑사(佛甲寺) 명부전(冥府殿) 시왕상(十王像)에서 발견된 권3 일부로, 『초조 대장경(初雕大藏經)』 간행 이전 시기인 고려 초의 판본으로 추정되고 있다. 취정사 『묘법연화경』은 조선의 명필가인 성달생(成達生)과 성개(成槪) 형제의 글씨로 1405년(태종 5) 안심사(安心寺)에서 간행한 판본으로, 이후 1422년(세종 4)의 대자암(大慈菴) 판본과 1436년(세종 18)의 동화사(桐華寺) 판본, 1448년(세종 30) 안평 대군(安平大君) 발문본 판각의 저본이 된 귀중한 판본이다. 2012년 10월 30일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16호로 지정되었으며,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취정사에서 소장하고 있다.
[편찬/간행 경위]
조선 시대 명필가인 성달생과 성개 형제가 선친의 명복을 기원할 목적으로 정서한 『법화경』을 판하본(板下本)으로 하여 1405년 전라도 도솔산 안심사에서 도인(道人) 신문(信文)이 주관하여 목판으로 새긴 것을 조선 전기에 후인(後印)한 것이다.
[형태/서지]
4권 2책[권1~권4]의 목판본이다. 책1의 크기는 가로 16㎝, 세로 28.8㎝이고, 책2의 크기는 가로 16.5㎝, 세로 28.3㎝이다. 포배장(包背裝)[호접장의 단점을 보완한 제본 형태. 글자가 밖으로 나오도록 접어 중첩한 후, 절단면 쪽에 송곳으로 구멍을 뚫어 비벼 꼰 종이끈으로 몸통을 꿰맨 다음 두꺼운 한 장의 종이로 책 위, 등, 아래를 덮어 싼 장정. 오래 사용하는 동안 표지가 떨어져 나가는 단점이 있다] 장정(裝幀)이다.
판본 형식은 위아래를 한 선으로 둘러싼 상하 단변(上下單邊)이며, 본문에는 개별 행 사이에 계선(界線)이 없다. 행자 수는 10행 20자이며, 주쌍행(註雙行)이다. 판심은 무어미(無魚尾)이며, 권수제는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판심제는 「묘법연화경 요해 서」에는 ‘법서(法序)’, 본문에는 ‘법(法)’으로 표기되어 있다.
[구성/내용]
전체 7권 3책 중 권1~2와 권3~4의 4권 2책만 남아 있는 결본(缺本)이다. 권1은 62장, 권2는 68장, 권3은 59장, 권4는 60장이다. 권1: 1-2 중 1은 『법화경』을 설하게 된 인연[서품], 2는 모든 가르침은 일불승을 위한 방편[방편품], 권2: 3-4 중 3은 중생의 고통을 불타는 집에 비유하다[비유품], 4는 진실을 믿고 알아야 한다[신해품]이고, 권3: 5-7 중 5는 부처님의 방편을 크고 작은 약풀에 비유하다[약초유품], 6은 네 명의 제가가 수기를 받다[수기품], 7은 방편으로 큰 성을 만들게 된 까닭[화성유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4: 8-13 중 8은 오백 아라한이 수기를 받고 기뻐하다[오백제자수기품], 9는 도를 배우는 이와 다 배운 이들이 수기 받다[수학무학인가품], 10은 가르침을 전하는 법사의 공덕[법사품], 11은 다보여래의 보배 탑을 열다[견보탑품], 12는 전생에 부처님 스승이던 제바달다[제바달다품], 13은 『법화경』을 받아 지닐 것을 권하다[권지품]로 이루어져 있다.
[의의와 평가]
취정사 묘법연화경은 결본이고 후인본이라는 아쉬운 점이 있지만 떨어져 나간 부분이 적고 변상도(變相圖)가 있으며, 선장(線裝)이 아닌 포배장으로 장정되었다는 점 등에서 가치가 높은 유물로 판단된다. 특히 포배장법은 조선 초에 잠시 이용된 장정법으로, 전래되는 판본이 극히 드물다는 점에서 서지학적 가치가 높은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