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71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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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啓洛詩碑 |
영어의미역 | Monument of Poem for Choi Gyerak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유적/비 |
지역 | 부산광역시 중구 용두산길 35-18[광복동 2가 1-2]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손남훈 |
[정의]
부산광역시 중구 광복동 2가 용두산 공원에 있는 시인 최계락의 시비.
[개설]
최계락(崔啓洛)은 1930년 9월 30일 경상남도 진양에서 태어났다. 동아대학교를 수료하였고, 1952년 시 「애가」로 『문예』의 추천을 받아 등단하였다. 1956년 국제신문사에 입사하여 문화 조사 부장, 정경 부장, 편집 부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아동 문학 관련 번역서, 편역서, 동시집 『꽃씨』, 『꼬까신』 등을 남겼으며 1970년 7월 4일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동시를 시로서의 미학으로 끌어올렸고 1960년대 본격 시 운동[동시]의 가교 역할을 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1963년 부산시 문화상, 1967년 소천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건립 경위]
용두산 공원 일대를 문화의 거리로 제정하여 매년 문화 예술 거리 축제 등 행사를 벌이는데, 그 사업의 하나로 시의 거리를 조성하였다. 시민의 정서 함양과 문화 공간을 제공하기 위하여 부산광역시 문화체육과와 부산문인협회가 공동추진위원회[위원장 김용태]를 결성하여 1993~1997년 5개년 연차 사업 계획으로 시비를 건립하였다.
유치환의 「그리움」, 최계락의 「외갓길」, 장하보의 「원」, 홍두표의 「나는 곰이로소이다」, 조향의 「에피소드」, 손중행의 「세월」, 김태홍의 「잊을래도」, 박태문의 「봄이 오면」, 원광의 「촛불」이 새겨진 9개 시비가 나란히 서 있다. 최계락 시비(崔啓洛詩碑)는 1994년 2월 25일 조성되었다.
[위치]
부산광역시 중구 광복동 2가 1-2번지 용두산 공원 내 시의 거리에 있다.
[형태]
받침돌 위에 자연석으로 된 비신(碑身)이 얹어 있으며, 그 위에 조형물이 있다. 글씨를 새긴 부분은 평면으로 되어 있으며, 세로로 글이 새겨져 있다. 높이 140㎝, 너비 130㎝, 두께 70㎝이다.
[금석문]
“복사꽃 발갛게/ 피고 있는 길/ 파아라니 오랑캐가/ 피며 있는 길/ 엄마한테 손목 잡혀/ 나서 첨으로/ 하늘하늘 아가의/ 외갓집 가는 길은/ 나비가 앞장서는/ 붉은 언덕길/ 바람이 앞장서는/ 파아란 들길.”
[현황]
용두산 공원 주차장에서 공원으로 오르내리는 길가에 조성되어 있어 시민들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부산문인협회가 소유하고, 부산시설공단 중앙공원사업소에서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최계락 시비에서 화자가 가고 있는 외갓집은 낙원의 상징이며, 외가로 가는 여정은 낙원 회복의 과정이다. 외갓집은 어머니의 본향으로 모성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곳으로 가는 길이 복사꽃과 오랑캐꽃이 피어 있다는 점은 무릉도원의 고사를 충분히 연상시킨다. 그러므로 화자에게 붉은 복사꽃, 푸른 오랑캐꽃이 피어 있는 길은 나비가 앞장서고 바람이 앞장서는 미덥고 아름답고 즐거운 길이며 ‘낙원=외갓집’은 즐겁고 편안하고 행복한 느낌과 휴식과 안도를 안겨 줄 수 있는 것이다.
최계락의 시는 단순히 어린아이의 심리를 대신 표현한 것이 아니다. 이형기는 최계락의 시에 대해 “시로서 완전히 승화되어 있는 작품으로 어른이 읽으면 때 묻은 일상과 일상의 잡다한 상념을 떨치고 순수한 동심 회복이 가능한 훌륭한 시다”라고 하였다.
게다가 「외갓길」은 붉음과 푸름의 색채 대비, 세 개의 대목으로 시상을 구분하면서도 내부적으로 은밀한 변환을 꾀한 점 등에서 형식적으로도 동시 이상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최계락 시인을 “장인적 기질에 다름 아닌 시인이라 할 만하다”[강희근]는 평가가 가능한 이유이다. 최계락 시비는 이기대[「꽃씨」], 금강 공원[「꽃씨」], 대신 공원[「해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