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57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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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泰俊 |
영어음역 | Bak Taejun |
이칭/별칭 | 청암(靑岩)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면 임랑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차성환 |
[정의]
현대 부산 출생의 기업가이자 군인, 정치가.
[가계]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호는 청암(靑岩)이다. 아버지 박봉관과 어머니 김소순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활동 사항]
박태준(朴泰俊)[1927~2011]은 1927년 음력 9월 29일 당시 경상남도 동래군 장안면 임랑리[현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면 임랑리]에서 태어났다. 1933년 9월 가족이 일본으로 간 뒤 그곳에서 다가심상소학교[1934년 입학], 이야마북중학교[1940년 입학], 와세다대학 기계공학과[1945년 입학]를 다녔다. 1945년 해방이 되자 귀국하였다가 1946년 다시 일본으로 가서 와세다대학을 다니다 중퇴하고 1948년 귀국하였다. 그해 부산에서 국방경비대에 자원하였고, 남조선경비사관학교 생도로 선발되어 7월 소위로 임관되었다.
1949년 중위·대위로 진급하였고, 1950년 소령으로 진급하였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전선을 따라 후퇴와 진격을 거듭하였다. 1952년 중령으로 진급하였고, 1953년 지리산 빨치산 토벌 작전에 참가하였다. 1953년 육군대학[현 육군사관학교]을 입학하여 1954년 수석 졸업하였고, 1955년 대령으로 진급하였다. 1956년 국방대학을 졸업한 뒤 국방대학 교수, 국방부 인사 과장, 25사단 참모장, 부산군수기지사령부 인사 과장 [1960년] 등을 지냈다. 1961년 7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비서실장, 9월 상공 담당 최고 위원을 지냈고 1963년 12월 소장 진급과 동시에 예편하였다.
1964년 12월 대한중석광업 사장을 지냈고, 1967년 가을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지시로 종합 제철소 건설 추진 위원장에 취임하였다. 1968년 4월 포항제철[현 포스코] 대표 이사 사장을 맡았고, 1980년 포항제철 초대 회장에 취임, 1992년 포항제철 명예 회장에 추대되었다. 1992년 10월 퇴임할 때까지 포항제철을 건설하는 데 진력하여 연산 2,100만 t의 생산 능력을 가진 세계 3위의 철강 회사를 일구어 내었다.
박태준은 불철주야 종업원과 함께 건설 사업을 진두지휘하였고, 어려운 난관이 생기면 정면으로 돌파하였다. 박태준의 활동은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하나의 신화적 업적을 이룬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정치 활동도 하여 1973년~1978년까지 국가보위입법회의에 참가하였으며, 2000년 제32대 국무총리에 취임하였다. 2008년 6월 포스코청암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하였으며, 2011년 12월 13일 급성 폐 손상으로 치료를 받다가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는 『누가 새벽을 태우는가』[자유시대사, 1992], 『신종 이산가족』[포항종합제철중우회, 1987]이 있다.
[묘소]
장례는 사회장으로 치러졌고, 국립 서울 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상훈과 추모]
충무 무공 훈장[1950·1952], 화랑 무공 훈장[1951·1953·1954], 국민 훈장 무궁화장[1974], 레종도뇌르 훈장[1990], 노르웨이 국왕 훈장[1991], 한국 경영자 대상[1992] 등을 수상하였으며, 사후 청조 근정 훈장이 추서되었다. 또 1988년 미국 카네기맬런대학교 공학 명예박사 학위, 영국 셰필드대학교 금속 공학 명예박사 학위, 1992년 모스크바대학교 경제학 명예박사 학위 등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