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48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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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釜關- |
영어공식명칭 | PUKWAN FERRY Co.,Ltd.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중구 충장대로 24[중앙동 4가 15]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성일 |
[정의]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 4가에 있는 해운업체.
[변천]
1967년 8월 9일 제1차 한일 경제 각료 회의와 1968년 8월 27일 제2차 한일 경제 각료 회의에서 부산 지역과 일본 시모노세키[下關] 간의 항로 개설이 논의되었고, 이에 따라 1969년 8월 30일에 부관훼리가 설립되었다. 한일 양국이 공동 운항하기로 하고 양대 법인으로 부관페리[자본금 8500만 원]와 관부페리[자본금 1억 800만 원]가 각각 설립되었다.
1969년 9월 1일에 교통부가 부산~시모노세키 항로를 사전 승인하였다. 1970년 5월에 본점을 부산직할시 중구 중앙동의 현 사업장으로 이전하였다. 일본 국적선 관부페리호는 같은 해 6월 16일에 승객 234명과 자동차 30대를 싣고 시모노세키를 출발하여 동년 6월 19일에 부산 제2 부두에 첫 입항하였다. 1975년 1월 29일에 서울 지사를 설립하였고, 1976년 7월 10일에 일본 국적선을 5,200톤 카페리(car ferry)로 대체하였다. 1982년 10월 13일에는 자본금을 3억으로 증자하였다.
1983년 2월 1일에 국적선 5,631.38톤을 도입하였으며, 그해 4월 27일에 국적선 훼리부관호가 취항하였다. 1984년 9월 16일에 일본 국적선을 6,590.38톤으로 대체하였다. 1986년 3월 1일에 서울 지사를 서울특별시 종로구 적선동 80번지로 이전하였다. 1989년 1월 30일에 매일 운항을 개시하였다. 1994년 6월 29일에 자본금을 6억 원으로 증자하였고, 1997년 3월 10일에는 자본금을 31억 원으로 증자하였다. 1998년 8월 28일에 하마유(Hamayuu)를 운항[1만 6187톤, Ferry Kampu와 교체]하였으며, 2000년 6월 15일에 신조 계약을 체결[US $3억 2000]하였다.
2002년 5월 22일에 국내 최초로 신조선 성희호를 운항하였으며, 같은 해 10월 21일에는 부산~히로시마 간을 취항[은하호, 1만 729톤]하였다. 2005년 8월 22일에 부산~히로시마 간[은하호]을 휴항하게 되었으며, 2006년 11월 6일에는 자본금을 48억 원으로 증자하였다. 2007년 4월 2일에는 서울 지사를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 1가 16번지로 이전하였다. 같은 해 11월 6일에 자본금을 65억 201만 5000원으로 증자하였다. 2011년 3월 15일에는 종합인증우수업체[AEO, Authorized Economic Operator] Level AA를 획득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한일 페리는 공동 채산 방식으로 운영되었고, 1983년까지는 적자를 기록하였으나 이후 흑자 경영 체제에 들어갔다. 국적선 선사이며, 1998년 1월에 ISM CODE 육상[DOC] 인증을, 1999년 6월에는 선박[SMC] 인증을 획득하였다. 또한 2002년 5월에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건조한 신조선 성희호가 취항하였다. 매일 2척의 카페리 운항을 하며, 여객 수송과 화물 수출입을 병행하고 있다.
[현황]
부관훼리의 조직은 대표 이사 아래 부사장이 있으며, 감사와 전무 이사가 있다. 부사장 아래에는 관리부와 경리부, 영업부, 서울 지사가 있다. 2012년 기준 경영진으로 대표 이사 1명, 감사 1명, 사내 이사 3명, 기타 비상무 이사 2명이 있다. 자본금은 2006년까지는 31억 원이었고, 2008년에 48억 원으로 증가되었다. 2008년 이후는 65억 200만 원으로 변화가 없다. 매출액은 2008년에는 212억 남짓이었고, 증감을 반복하고 있다. 2011년은 257억여 원으로 역대 최대였고, 2012년에는 전년보다 감소하여 224억여 원이었다. 상시 종업원 수는 변화가 없으며, 2012년 기준으로 61명이다.
[의의와 평가]
부관훼리는 국내에서 유일한 국적선 선사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1905년(고종 42) 9월 11일 일본 산양철도와 일본철도가 이키마루호를 투입하여 격일제로 운항한 관부 연락선이 시초이다. 1949년 4월에 항로가 전면 폐쇄되었고, 국교 정상화 이후 다시 연락선에서 ‘페리’라는 명칭으로 취항한 것이다. 한일 관계가 정상화되었다고 하지만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한 시절에 설립되어, 이후 41년 넘게 무사고 운항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