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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성해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4671
한자 協成海運
영어공식명칭 Hyupseong Shipping Co., Ltd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대로 72[중앙동 4가 25-2] 유창 빌딩 3층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수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해운업체
설립자 왕상은
전화 051-463-1451
홈페이지 협성해운(http://www.hyopsung.com)
설립 시기/일시 1950년 7월 4일연표보기 - 설립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74년 6월 - 인천시 중구 신흥동 컨테이너 하치장 매입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74년 10월 - 부산직할시 남구 용호동 컨테이너 하치장 매입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74년 12월 - 영창해운 출자 설립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76년 2월 - 협성검정 출자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88년 3월 - 예인선 투입[동백호, 국화호, 모란호]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2년 10월 - 예인선 도라지호 추가 도입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6년 5월 - 예인선 진달래호 투입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7년 2월 - 예인선 동백1호 투입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8년 6월 - 예인선 국화1호 투입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06년 10월 - 예인선 개나리호 투입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12년 10월 - 예인선 목련호 투입
최초 설립지 협성해운 - 부산광역시
현 소재지 협성해운 -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대로 72[중앙동 4가 25-2] 유창 빌딩 3층지도보기

[정의]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 4가에 있는 해운업체.

[설립 목적]

협성해운은 선박 대리점업의 영위를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변천]

1950년 7월 4일에 부산시에서 해운 대리점 업체인 협성해운으로 설립되었다. 1953년 휴전 협정 체결 후 Lloyd’s 대리점인 Holme Ringer 모지[門司]지점과 제휴하여 Lloyd’s 부대리점[sub-agent]이 되었다. 1956년에 협성해운 내에 검정부를 개설하였으며, 1970년대 초에 본사를 서울 사무소로 이전하였다. 1974년 6월에 인천시 중구 신흥동의 컨테이너 하치장을 매입하였고, 그해 10월에는 부산직할시 남구 용호동의 컨테이너 하치장을 매입하였다. 같은 해 12월에 영창해운을 출자 설립하였고, 1976년 2월에 협성해운 검정부가 분리 독립하여 협성검정이 되었다.

1988년 3월에 예인선을 투입[동백호, 국화호, 모란호]하였으며, 1992년 10월에 예인선 도라지호를 추가 도입하였다. 1996년 5월에는 예인선 진달래호, 1997년 2월에는 예인선 동백1호, 1998년 6월에는 예인선 국화1호, 2006년 10월에는 예인선 개나리호, 2012년 10월에는 예인선 목련호를 신조 투입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협성해운은 선박 대리점업과 예선업, 내륙 수상 운송업, 화물 보관 취급 업무를 하고 있다. 선박 대리점업으로 벌크선과 탱커선[원유선·제품선·석유 화학 제품 운반선], 냉동 화물 운반선, 여객선, 조선소 수실선, 급유선, 해군 함정 등 다양한 선박 종류에 대해 연간 400여 척의 선박을 취급하고 있다.

[현황]

2013년 8월 기준 협성해운의 조직은 서울 본사와 부산 사무소, 인천 사무소로 구성되어 있다. 회장 아래 사장과 부사장이 있다. 서울 본사에는 경리부와 영업부가 있으며, 부산 사무소에는 경리부와 영업부, 예선부가 있다. 인천 사무소에는 영업부가 있다. 선원을 포함하여 서울특별시와 인천광역시에 11명의 직원 있으며, 부산 지역에는 53명의 직원이 있다. 보유한 예인선으로는 동백1호와 국화1호, 목련호, 도라지호, 진달래호, 개나리호가 있다.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 1가에 서울 본사가 위치하며,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 4가에 부산 사무소가 있다. 인천광역시 중구 신흥동 3가에는 인천 사무소가 자리한다.

[의의와 평가]

협성해운은 6·25 전쟁으로 일본~부산 간 선박 운행이 빈번해짐에 따라 성장하였다. 1950~1960년대 외항 해운업을 이끌어 간 대표적인 해운업체이다. 1970년대 부산항에 입항하는 선박의 40%를 처리할 정도의 지위를 가졌으며, 극동선박과 함께 외국 선사들의 업무를 도맡다시피 한 선박 대리점이었다. 1982년에는 기준 1만 톤급 2척을 포함해 선박 20척을 보유할 정도로 규모가 컸으며, 이후 부산 지역에서 해양 운송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해 오고 있다.

협성해운의 회장 왕상은은 부산 지역의 원로 기업인으로 부산 경제 발전을 이끈 인물이다. 한국 최초의 선원 송출업 개시와 한국 선주로서 처음으로 국적 취득 조건부 나용선(國籍取得條件附裸傭船)[용선 기간이 끝난 후 용선자가 속한 국가의 국적을 취득하는 조건으로 하는 용선 계약]을 통해 선대를 확보하는 등 해운 산업 발전에 공헌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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