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47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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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自由建設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장지용 |
[정의]
부산광역시에 있었던 건설업체.
[변천]
1957년 3월 25일 경상남도 사천시에서 자유건설이 설립되었다. 1976년 부산직할시로 본사를 이전하였다. 1998년 2월 11일 최종 부도 처리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1970년대까지 주요 사업은 건축업이었다. 동아대학교 승학캠퍼스, 동래여자전문대학[현 동부산대학교] 캠퍼스,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공사 등이 이 시점에 이루어졌다. 1980년대 들어서는 주택 사업과 대규모 토목 수주 사업으로 사업 영역이 확장되었다. 우암 자유아파트 1,500여 세대를 비롯하여 6,000여 세대의 아파트를 직접 시공했다.
활발한 토목 수주 사업에 힘입어 1994년 도급 한도액 1292억 원을 기록, 1000억 원대를 돌파했다. 1996년에는 1344억 원을 기록하였고, 도급 한도액 전국 순위 99위를 차지하였다. 1997년에는 시공 능력 공시액이 1392억 원으로 부산 지역에 본사를 둔 업체 중 6위를 기록했으나 서울에서 진출한 업체를 제외한 순수 향토 건설업체로는 사실상 1위에 올라있었다. 1996~1997년도에는 5,400여 세대의 아파트를 공급하였다. 완벽한 시공을 위한 사전, 사후 관리 시스템과 하자 보수 기동반을 부산 지역에서 최초로 도입하였다.
[의의와 평가]
1997년 경제 위기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부산 건설업계의 맏형격인 자유건설이 사라진 것은 아쉽다. 1985년 건설 업체로서는 처음으로 정주영(鄭珠永) 회장이 부산상공회의소 회장을 역임하여 지역 경제 발전에 일익을 담당했다. 1980년대 부산발전협의회 회장 등을 맡으면서 지역 현안 해결에도 앞장서 부산고등법원과 부산고등검찰청 유치, 부산 지역에 본사를 둔 생명 보험사 유치,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 유치 등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1997년 7월 18일 자유건설을 살리지 못하고 타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