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4773 |
---|---|
한자 | 三湖海運 |
영어공식명칭 | Samho Shipping Co., Ltd.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중구 대교로 155[중앙동 4가 19]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장지용 |
[정의]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에 있었던 해운업체.
[설립 목적]
삼호해운은 해상 급유업을 목적으로 설립되었으나 사업 목적을 해상 운송업으로 변경하였다.
[변천]
1992년 1월 27일 성호급유로 설립되었다. 1996년 1월 상호를 삼호해운으로 변경하였다. 1996년 3월 사업 목적을 해상 운송업으로 변경하고 성호해운으로부터 주양호를 인수하였다. 1996년 4월 본점을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으로 이전하였다. 1997년 2월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서울 사무소를 개소하였다. 1998년 3월 한국선급으로부터 ISO 9002 인증[국제 표준화 기구(International Standardization Organization) 품질 시스템 인증]을 획득하였다. 1999년 5월 민양호[2,901톤], 11월 삼호마리너호[1,811톤]을 건조하였다.
2000년 12월 삼호해운 울산 사무소를 개소하였다. 2001년 4월 삼호글로발호[1,877톤]을 진수하였다. 2001년 9월 본점을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 반도 빌딩으로 이전하였다. 2002년 10월 해운 대리점 사업에 진출하였다. 2003년 6월 삼호해운 중국 사무소를 개설하였다. 2005년 5월 바다의 날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2006년 11월 제43회 무역의 날 2000만 불 수출의 탑을 수상하였다.
2007년 10월 본점을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 삼호 중앙 빌딩으로 이전하였으며, 11월 제44회 무역의 날 3000만 불 수출의 탑을 수상하였다. 2008년 12월 상공회의소 산업 대상을 수상하였다. 2010년 4월 삼호드림호가, 2011년 1월에는 삼호주얼리호가 소말리아 해적에 피납되었다. 2011년 4월 21일 기업 회생 절차를 신청하였으며, 5월 31일 부산지방법원으로부터 회생 절차 개시 결정이 내려졌다. 2012년 7월 부산지방법원으로부터 회생 절차 폐지 결정이 내려졌으며 법인 등기부 등본상 파산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외항 운송업을 주요 업종으로 하여 주로 해상 화물 운송업을 하였고, 해운 대리점업도 하였다. 해상 운송, 조선, 금속·철강, 해상 건설, 부동산, 선박 설계, 무역, 에너지[석유] 분야 등의 계열사별로 전문화된 사업 영역을 확보하고 있었던 삼호그룹의 모태 기업이다. 1996년 3척의 석유 화학 제품 수송용 탱커선으로 사업을 시작하였고, 3,500톤급 소형 선박부터 2만 톤 급 석유 화학 운반선까지 모두 11척의 다양한 선종을 보유한 중견 선사였다. 초기에는 극동 지역에 국한된 영업을 하였고, 이후 동남아, 중동, 유럽까지 영업 영역을 확대하였다.
[의의와 평가]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납치됐다가 ‘아덴만 여명 작전’으로 구출된 삼호주얼리호의 선사로 잘 알려져 있다. 삼호해운을 기반으로 삼호그룹이 성장하였다. 그러나 계열사였던 삼호조선은 조선업계의 불황으로 2012년 2월 14일자로 기업 회생 절차[법정관리] 폐지가 결정되어 청산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삼호조선은 1만~2만DWT[Dead Weight Tonnage, 재화 중량 톤수, 적재 화물 중량]급 탱커선을 주로 건조하던 회사로 조선 호황기인 2000년대에는 수주 잔량 기준으로 세계 100대 조선소에 포함될 정도였다.
삼호그룹의 계열사인 또 다른 주력 계열사인 삼호아이앤디도 기업 회생 절차에 들어갔다. 해상 크레인의 제작과 운용 및 해상 공사를 수행하는 업체로 천안함 인양과 북항 대교 공사를 수행하는 등 해상 크레인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해왔다. 2009년을 기준으로 삼호그룹의 총 매출액은 1조 5000억 원이었고, 종업원은 3,500명이었다. 부산 지역에서 출발한 또 하나의 그룹이 해체되고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