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4697 |
---|---|
한자 | 國際化學 |
이칭/별칭 | 국제상사,왕자표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동구 중앙대로286번길 7[초량동 1162-9]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현석 |
[정의]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에 있는 신발 제조업체.
[변천]
1938년 양태진이 일본인과 합작으로 부산부 범일정에 ‘만류일흥업(滿留一興業)’이라는 정미소를 설립하였다. 1947년 12월 자본금 1000만 환으로 국제화학을 설립하였다. 1962년 2월 15일 등록 번호 6409호로 왕자표를 상표 등록하고 신발 수출을 시작하였다. 1963년 7월 자본금 2500만 원으로 진양화학(進洋化學)을 설립하였다. 1953년 9월과 1960년 3월 범일동 공장에 화재가 발생하였다.
1967년 봉황상과 상공부 장관상을 수상하였다. 1968년 봉황대상을 수상하였다. 1970년 전년 동기 대비 40% 이상 수출 신장률을 유지한 공로로 상공부로부터 수출 유공자 포창을, 1971년 수출의 날 은탑상을, 1974년 금탑 산업 훈장을, 1975년 2억 달러 수출을 달성한 공로로 대통령기를 수상하였다. 1974년 8월과 1975년 5월 부산직할시 사상구 괘법동 공장에 화재가 발생하였다. 1975년 11월 14일 종합 무역 상사로 지정되었다. 지정될 당시 50만 달러 이상의 수출품으로 신발, 여행 용구, 금속, 양식기, 석등, 가죽 제품, 섬유·직물·섬유사 등 7개가 있었고, 10개국에 100만 달러 이상을 수출했으며, 10개 도시에 지사를 갖고 있었다. 1976년 10월 국제상사로 개칭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고무신, 운동화, 농구화, 고무 구두, 고무장화, 포화 등을 주로 생산하였고, 이후에는 여행 용구, 금속, 양식기, 석등, 가죽 제품, 섬유·직물·섬유사 등도 수출하였다. 확인 가능한 자료에 따르면 종업원 수는 1962년 1,835명, 1964년 2,740명, 1969년 2,786명, 1972년 4,532명[사상 공장 포함], 1975년 1만 2870명, 1977년 2만 624명[국제상사 포함] 등이었다. 1968년 대한상공회의소 『전국 기업체 총람』에 의하면 종업원 규모가 전국 8위였다. 생산액은 1970년 22억 8600만 원, 1971년 55억 8200만 원, 1972년 83억 7200만 원 등이었다.
[의의와 평가]
부산을 대표하는 기업이었던 국제화학은 왕자표 신발로 우리나라 제일의 신발 상표로서 확고한 위치에 있었다. 왕자표는 고무신계의 왕자로서 한국 고무신계는 물론 세계에도 진출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었다. 국제화학의 왕자표 고무신이 소비자에게 인기가 있었던 것은 도시 지역과 농촌 지역을 구분하여 제품을 차별화하고, 천연고무와 합성 고무를 배합한 후에 화공 약품으로 탄력을 보강하여 내구성을 높였기 때문이었다.
상장된 해인 1973년의 기업 분석에 의하면 총 매출액의 90% 이상을 수출하고 있었다. 국제화학이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수출 시장에서의 쿼터 경기 때문이었다. 미국 시장에서의 압도적인 기업 지정 쿼터에 미국의 수입 제한 정책으로 시장 독점이 가능하였기 때문에 동종 업계의 치열한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1976년에 국제상사로 전환된 이후에도 부산 지역에서 뿐만 아니라 전국에서도 차지하는 비중이 큰 회사였다. 특히 부산 지역의 고용과 수출에서 주요한 역할을 한 기업이었고, 국제화학을 모태로 국제그룹이 탄생할 수 있었다. 1980년대 국제그룹 해체 이후 국제상사는 지금의 LS네트웍스로 바뀌었고 그 유명했던 왕자표 고무신은 사라졌다. 계열사였던 진양화학은 업종을 다소 변경하였지만 여전히 건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