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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4652
한자 釜下鐵道會社
영어의미역 Buha Railroad Company
이칭/별칭 하단철도
분야 역사/근현대,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전성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철도 회사
설립자 박기종
설립 시기/일시 1898년 5월연표보기 - 설립 인가
해체 시기/일시 1898년연표보기 - 해체
최초 설립지 부하철도회사 - 부산광역시

[정의]

개항기 부산 지역 최초로 박기종이 설립하려고 추진하였던 철도 회사.

[설립 목적]

부하철도회사부산항에서 하단포까지 화물 수송을 중심으로 한 경편 철도 건설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변천]

1897년 9월 부하철도회사 설립 청원서를 농상공부에 제출했으나 궤간(軌間)[궤도의 한 레일과 마주 보는 레일과의 거리]의 폭, 용지 매수, 착공 시기, 준공 시한에 관한 규정 등 상세한 내용이 누락되어 신청이 각하되었다.

1898년 5월 발기인 박기종과 윤기영, 보증인 윤기선 등의 명의로 청원서를 제출하여 6월 3일 부하철도회사의 설립을 허가받았다. 이후 회사는 역원으로 도사장 이재순, 사장 안경수, 부사장 민영철, 총무원 박기종을 선출하고 박기종의 실질적인 주도에 의해 몇 차례의 측량을 실시하는 한편, 주식 모집에 들어갔다. 하지만 철도 건설을 위한 자본금 10만 원을 조달하지 못하여 건설되지 않았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개항기 하단포는 구포와 함께 낙동강 연안을 따라 경상도 지역의 중요한 물산이 집결하는 포구였다. 강의 수심 때문에 낙동강 상류로부터 운반된 물자는 일단 하단포 또는 구포에 내려 다시 배를 바꿔 타고 부산항 또는 다른 곳으로 이동되었다.

일차적으로 하단포와 구포에 집산된 물산은 다시 육로 또는 연안 항로를 따라 부산항에 운반되었다. 그러나 하단포부산항을 잇는 육로는 높은 고개가 가로막고 있어 운송이 어려웠고, 연안 항로는 바다와 강이 만나는 몰운대 앞의 험난한 해로로 말미암아 많은 선박들이 난파되는 유명한 곳이었다. 당시 박기종이 경영했던 기선회사의 선박도 이곳에서 침몰한 적도 있었다. 이 때문에 박기종낙동강 상류로부터 집산한 물산의부산항 운반을 위해 경편 철도를 부설하여 경상도 지역의 물산을 부산항으로 운반하고자 하였다. 더 나아가 이렇게 운반한 물산은 부산항을 통해 일본 등으로 수출하고자 하였다.

몇 차례에 걸쳐 주식 모집을 공고하여 서울과 인천 지방에서 100원 주에 41명, 25원 주에 6명이 응모했지만 더 많은 주주와 자본금을 확보하지 못하여 건설이 이뤄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당시 일본에 의해 추진되던 경부선 건설이 하단포의 상류에 있는 구포와 부산항을 연결하도록 계획되는 등 강력한 경쟁선이 존재하였기 때문이었다. 부산항하단포 간 철도 부설 예정지에는 대티 고개[현 부산광역시 사하구와 서구 사이]라는 큰 고개가 있어 철도 건설에 걸림돌로 작용하였다. 수차례에 걸쳐 측량은 했지만 구체적으로 대티 고개를 가로지르는 터널 등 건설 기술력을 확보하지 못하였다.

부산항에 본사를 설립하고 동래부 내 하단포에 지사를 설립하며, 중간 각 구 요지에 정차장을 설치할 계획이었다. 주요한 목적은 화물 운반으로 마력 또는 기관을 이용하는 경편 철도로 건설할 계획이었으며, 정관 경비 부분의 차량비 명목에 객차 6량도 포함되어 있는 등 여객 운송도 고려되었다. 더불어 궤도는 약 106㎝[3척 5촌] 정도로 당시 일본 철도의 궤간과 비슷한 표준 궤도를 설정했던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부하철도회사는 자본의 미비로 부산항에서 하단포까지 경편 철도 건설에는 실패했지만 조선 최초의 민간 철도 회사로 자주적 철도 건설을 계획한 점에 그 의의가 크다.

정관에 따르면 회사의 존립 기간은 개업일로부터 만 5년으로 하고, 그 후의 존폐는 사원 총회에서 결정하기로 하였다. 한편 각 사원이 부담해야 하는 의무는 자금액에만 한정한다고 하여 사원 책임이 유한임을 명문화하는 등 근대적 회사 제도에 대한 인식이 반영된 부산 지역의 회사였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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