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조선와사전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4482
한자 朝鮮瓦斯電氣
영어음역 Joseonwasajeongi
영어의미역 Joseon Wasa Electric Company
이칭/별칭 한국와사전기주식회사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동|부평동|서구 토성동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배석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주식회사|기업체
설립자 마츠다이라 마사나오 외 27명
설립 시기/일시 1910년 10월 18일연표보기 - 한국와사전기 설립
해체 시기/일시 1937년 3월 10일연표보기 - 남선합동전기에 흡수 합병
이전 시기/일시 1911년 7월 26일 - 부산시 대청동 2가에서 대청동 1가로 이전
이전 시기/일시 1913년 12월 16일 - 부산시 대청동 1가에서 토성동 1가로 이전
이전 시기/일시 1927년 3월 31일 - 지점을 본점으로 전환하고, 부산시 토성동 1가에서 부평동 3가로 이전
개칭 시기/일시 1913년 3월 29일연표보기 - 한국와사전기에서 조선와사전기로 개칭
최초 설립지 한국와사전기 -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동 2가 19지도보기
주소 변경 이력 한국와사전기 -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동 1가 31
주소 변경 이력 조선와사전기 - 부산광역시 서구 토성동 1가 160
주소 변경 이력 조선와사전기 - 부산광역시 중구 부평동 3가 56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 있었던 전기·가스 관련 일본인 기업.

[설립 목적]

조선와사전기는 1910년 일본 귀족원 의원이었던 마츠다이라 마사나오[松平正直] 등이 부산 지역의 전차 운행, 독점적인 전등 가설 및 가스[와사(瓦斯)] 공급을 위하여 설립하였다.

[변천]

1910년 4월 24일 마츠다이라 마사나오 외 27명이 발기하여 전차와 전등, 가스 사업의 특허 출원을 부산이사청에 제출하여 5월 18일 허가를 받았다. 이들은 회사 창립을 위한 준비를 추진함과 동시에 5월 19일 부산전등[주식회사]와 부산궤도[주식회사]를 각각 20만 엔과 5만 5000엔에 매수 가계약을 체결하고, 자본금 300만 엔으로 10월 18일 정식으로 한국와사전기[주식회사]를 창립하였다.

한국와사전기는 1911년 대청동 1가 31번지로 이전하였고, 1913년 3월 조선와사전기로 명칭을 변경하였으며, 12월 토성동 1가 160번지로 지점을 이전하였다. 1915년 누적된 적자로 경영진이 퇴진하고 유력 자본가였던 카시이 겐타로[香椎源太郎]가 경영권을 장악하였다.

1927년 부산 지점 을 부평동 3가 56번지로 이전하면서 본점으로 승격시키고, 기존 일본 도쿄의 본점은 지점으로 전환하였다. 독점 사업을 영위하면서 성장을 거듭하던 조선와사전기는 1937년 전시 체제 구축의 움직임과 조선총독부의 전기 사업 합리화 정책에 의거하여 3월 10일자로 서울 이남 지역의 6대 전기 회사를 통합하여 신설된 남선합동전기(南鮮合同電氣)에 흡수·합병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전기와 가스 공급 및 전차 운행의 3가지 사업을 주력으로 경영을 시작했으나, 초창기 영업 실적은 좋지 않았다. 신규 사업으로 추진한 궤도 철도 사업의 자금 조달이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실패했음에도 무리한 주주 배당을 실시하는 등 초기 경영진이 방만한 경영을 지속했기 때문이었다.

1915년 경영권을 장악한 카시이 겐타로는 긴축 경영을 실시하는 한편으로 과감한 설비 투자를 감행하는 등 구조조정 및 경영 쇄신에 주력하였다. 그 결과로 1920년대에 들어서 회사는 점차 정상 궤도에 올라섰고, 안정적 성장을 지속하였다. 1920년대 중반부터 전기 사업의 공영화 문제가 대두되어 부산부가 공채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로 조선와사전기를 인수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결국 실패하였다. 남선합동전기에 흡수·합병되기 전까지 전기 공급 사업과 전차 운행 사업을 중심으로 활발한 사업을 하였다.

전기 공급 사업은 1920년대 중반 이후 인근 지역 배전 회사들을 인수하는 형식으로 공급망을 확장하여 1930년대 중반에 이르면 밀양, 마산, 진주, 함안 등 경상남도 일대까지 확장되었다.

전차 운행 사업 역시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최초 광복동, 대청동, 부평동 등 일본인 거류지에서 부산진에 이르는 구역이었던 것이 1930년대 중반에는 남항 끝단인 송도에서 동래 온천장, 그리고 영도 대교 가설로 영도까지 포함하여 도심 전체가 전차 교통망에 포함되게 되었다. 1935년 3월 기준 전차 노선은 5개 노선으로 총 연장 2만 1715㎞였다.

[의의와 평가]

조선와사전기의 설립과 활동은 정책적 개발이 아닌 이윤과 결합한 민간 주체의 공공재 경영의 전개 과정을 볼 수 있는 것도 흥미롭다. 아울러 일본인 기업체에 대한 분석이나 지역 유력 자본가였던 카시이 겐타로에 대한 연구에도 유용한 소재라고 할 것이다. 특히, 일제 강점기 일본인 주도로 전개된 부산 지역의 전기·가스·철도 설치 등 도시화 과정의 일면을 파악할 수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