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38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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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生川堰 |
영어음역 | Sangcheon-eon |
이칭/별칭 | 아랫못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지명/고지명 |
지역 |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수한 |
[정의]
조선 후기 동래부에 있던 제언.
[명칭 유래]
생천언(生川堰)이란 명칭의 유래는 고려 시대 부산 지역에 존재한 생천 부곡에서 찾을 수 있다.
[형성 및 변천]
생천언에 관한 기록은 『동래부지(東萊府誌)』[1740] 이후 여러 읍지(邑誌)의 제언조에서 연속적으로 확인된다. 제언의 크기는 둘레 약 129.7m[428척], 길이 약 54.85m[181척], 폭 약 37.88m[125척]로 평균 수심이 약 1.97m[6척 5촌]이다. 조선 말까지 그 기록이 동일한 것을 보면 당시의 못은 상당히 넓고 깊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만 『부산부사 원고(釜山府使原稿)』[1938]에는 못의 축조 양식이나 수법으로 보아 신라 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예부터 이 지역은 황령산의 남쪽 기슭부터 동쪽으로 지형이 경사져 비가 오면 물길이 골짜기를 따라 흘러 자연적으로 못이 형성되었다. 하지만 1930년대 일제에 의한 근대식 저수지 신축과 1960~1970년대 토지 구획 정리로 택지화되면서 현재는 이름과 위치만 전해지고 있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생천언은 지금의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동 못골에 있던 세 곳의 저수지 가운데 하나이었다. 아랫못이라 불리던 생천언은 지금의 대연초등학교 부근에 있었다.
[관련 기록]
1740년에 간행된 『동래부지』 제언조에 “생천언은 동래부 남쪽 20리[약 8㎞] 되는 곳에 있다. 방죽의 길이는 181척이며 폭은 125척이다[生川堰在府南二十里長一百八十一尺廣一百二十五尺]”라고 기록되어 있고, 1765년에 간행된 『여지도서(輿地圖書)』 제언조에 “생천언은 동래부 남쪽 20리 되는 곳에 있다. 못의 둘레는 373척[약 113.033m]이며 물 깊이는 6척 5촌이다[生川堰在府南二十里周三百七十三尺水深六尺五寸]”라고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