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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야항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3485
한자 吾海也項
영어의미역 Ohaeya Harbor
분야 지리/인문 지리,역사/전통 시대
유형 지명/고지명
지역 부산광역시 사하구 감천동|사하구 괴정동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한정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지명
관련문헌 『태종실록(太宗實錄)』|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경상도 속찬 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비정 지역 오해야항 비정 지역 - 부산광역시 사하구 감천동|사하구 괴정동

[정의]

조선 전기 동래현에 있던 옛 지명.

[개설]

오해야(吾海也)는 ‘외양간’의 이두식 표기이고, 항(項)은 길목을 의미한다. 따라서 오해야항(吾海也項)은 ‘외양간으로 가는 길목’이라는 뜻이다. 그 위치는 오해야 목장과 봉수의 지리적 요소를 고려하면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1861]의 표기와 달리 오늘날의 부산광역시 사하구 괴정동·감천동 일대일 가능성이 높다.

[명칭 유래]

오해야항의 오해야는 옛글인 『월인석보(月印釋譜)』[1459], 『두시언해(杜詩諺解)』[1443], 『훈몽자회(訓蒙字會)』[1527]에서 볼 수 있는 ‘오회야’ 또는 ‘오해양’으로 마구간을 의미한다. 이 말은 뒷날 ‘외양간’으로 바뀌었다. 이두식으로 쓰자니 오해야가 되었고, ‘항’은 지나가는 길목을 말한다. 그러므로 오해야항은 ‘외양간으로 가는 길목’이라는 뜻이다.

[형성 및 변천]

외양간이라는 오해야의 명칭 유래와 『태종실록(太宗實錄)』[1416]에 “경상도 김해 근처의 승악산과 경계가 접한 오해야항에 목장을 쌓고”라는 기록을 통해 태종 때[1401~1418] 오해야항에 국영 목마장이 설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1469년(예종 즉위년)에서 1481년(성종 12) 사이에 석성 봉수대[현 부산광역시 서구와 사하구 경계에 소재]를 대신하여 오해야항 봉수대가 신설되었다. 이렇게 조선 시대 부산 지역에 있던 목마장과 봉수대를 통해 오해야항이라는 고지명(古地名)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이후 구체적 기록이나 변동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오해야항의 위치에 대해서는 크게 부산광역시 남구 용호동 일대와 사하구 감천동 일대로 보는 상반된 시각이 있다. 용호동 일대로 보는 주요 근거는 『대동여지도』의 동래 부분에서 오해야항오륙도의 바로 서쪽 반도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 『태종실록』에서는 승악산에 인접하고,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1454]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에서는 석포 목장이 동래현에 위치하는 데 비해, 오해야 목장은 동평현에 위치하고 있어 오해야항이 부산광역시 사하구 일대에 있던 것으로 확인된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오해야항 봉수는 동쪽에 황령산이, 서쪽에 김해부 성화례산이 각각 응하고 있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상과 같이 조선 시대 봉수대와 목장 소재지를 통해 오해야항부산광역시 남구 용호동보다는 사하구 감천동·괴정동 지역으로 비정할 수 있다. 한편, 오해야항이 현재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 앞에 있던 섬으로 일본의 매축 공사 때 없어졌다는 설과 신선대(神仙臺) 동쪽 산 위에 봉수대가 있었다는 설도 있다.

[관련 기록]

『태종실록』 권31, 태종 16년 1월 21일 기사에 “경상도 김해 근처의 승악산과 경계가 접한 오해야항에 목장을 쌓고 말 700여 필을 방목하였더니 그 말들이 살이 쪘습니다. 이 땅은 네 계절에 방목할 수 있어서 목장으로 가장 적당합니다. 만약 승악산에 7, 8리[약 2.75~3.14㎞]를 쌓는다면 1만여 필을 방목할 수 있습니다[慶尙道金海近處勝岳山連境吾海也項築場 放馬七百餘匹 其馬豐肥 此地可四時放牧 最宜牧場 若於勝岳山築七八里 則可放一萬餘匹]”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세종실록지리지』 동래현조에 “목장이 둘이니, 하나는 동평현 남쪽 22리[약 8.64㎞] 되는 오해야항에 있고 그 둘레는 74리[약 29.06㎞] 30보인데 안에 축장(築場)한 곳이 12리[약 4.71㎞] 90보이다. 나무가 성하고 풀이 적으나, 다만 물이 풍족하여 국마(國馬) 480필을 놓아먹인다. 다른 하나는 [동래]현 남쪽 석포에 있다. 국마 419필을 놓아먹인다[牧場二 一在東平縣南二十二里吾海也項 周回七十四里三十步內 築場處十二里九十步 木盛草疎 但水足 放國馬四百八十匹 一在縣南石浦 放國馬四百十九匹]”라고 되어 있다.

또한 『경상도 속찬 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1469] 동래현 목장조에 “오해야 목장은 둘레가 186리[약 73.05㎞]이고, 목마 793필이 있으며 물과 풀이 좋다[吾海也牧場周逥一百八十六里入牧馬七百九十三匹水草羙]”,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3 동래현조에 “오해야항동평현에 있으며, 현까지의 거리는 43리[약 16.89㎞]이고, 목장이 있다. 오해야항 봉수는 동쪽으로 황령산에 응하고, 서로 김해부 성화례산에 응한다[吾海也項 在東平縣距縣四十三里有牧場 吾海也烽燧 東應黃嶺山 西應金海府省火禮山]”라고 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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