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29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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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毛羅洞達成徐氏世居地 |
영어의미역 | Residential Place of Dalseong Seo clan in Mori-dong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사상구 모라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현라 |
[정의]
부산광역시 사상구 모라동에 있던 달성 서씨 세거지.
[개설]
달성 서씨(達成徐氏)는 사상의 구동계 향안에 5명이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지역의 오래된 성씨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임진왜란 전후 이곳에 정착한 서씨들은 그 가계를 알 수 없고 후손들도 모두 이곳을 떠났다. 그 가운데 일제 강점기까지 그 흔적을 알 수 있는 것이 모라동 달성 서씨 집안이다.
[명칭 유래]
모라는 마을이 사천(沙川)의 고운 모래밭에 펼쳐져 있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전한다. 즉 낙동강 하구 토사가 퇴적하면서 형성된 지형으로, 모래로 이루어진 땅인 ‘모래개’ 혹은 ‘몰개’에 넓은 땅을 의미하는 ‘라(羅)’가 붙어 모라가 된 것으로 본다. 또 다른 설로는 ‘모라’가 마을의 고어인 ‘모을’, ‘모들’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형성 및 변천]
18세기 경상남도 김해에서 서정재(徐正再)가 모라동으로 이거하여 정착하였다. 사상 향안에 21명이 수록되어 있으며, 조선 후기 여러 선비를 배출하였다.
[자연 환경]
모라동 동쪽에 백양산[운수산이라고도 함]에서 이어지는 산줄기가 있으며, 서쪽은 낙동강 사상 공단 유수로에 접한다. 서쪽 저지대에 시가지가 발달하였다. 동쪽 백양산에서 발원한 운수천이 서쪽 낙동강으로 유입한다.
[현황]
『경상남도 동래군 가호안』[1904]에는 달성 서씨 7가구가 산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조선의 성(姓)』[1934]에는 기록이 없다. 이는 『조선의 성』이 15가구 이상만을 기준으로 하였기 때문으로, 일제 강점기에도 이 지역에 달성 서씨가 계속 세거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는 그 후손을 찾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