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1073
영어의미역 Sodang-Narae Village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부산광역시 사상구 주례동 소당나래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전영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자연 마을
변천 시기/일시 1789년 - 동래부 사상면 주례리
변천 시기/일시 1914년 - 경상남도 동래군 사상면 주례리
변천 시기/일시 1963년 - 경상남도 동래군 사상면 주례리에서 부산직할시 부산진구 주례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75년 - 부산직할시 부산진구 주례동에서 부산직할시 북부출장소 주례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78년 - 부산직할시 북부출장소 주례동에서 부산직할시 북구 주례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95년 - 부산직할시 북구 주례동에서 부산광역시 사상구 주례동으로 개편
자연 마을 소당나래 마을 - 부산광역시 사상구 주례동 소당나래 마을

[정의]

부산광역시 사상구 주례동에 있었던 자연 마을.

[명칭 유래]

사람들은 이곳을 소당골 소당자리라 하였다. 한글학회에서 1980년 편찬한 『한국 지명 총람』10권인 부산·경남 편에 소당나래 마을 이름이 나타나 있다. 이곳에 소남(召南) 나루가 있었는데, 당시 이곳 주민들은 소람나래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것이 변용되어 소당나래라고 되었다고 추측된다.

[형성 및 변천]

소당나래 마을의 형성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시대 때 사목포(司牧浦) 등의 지명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시대에 마을이 형성되었으리라 추측된다. 소남 나루터는 사목포(司牧浦) 북쪽에 있던 나루터였다. 『동래부지(東萊府誌)』[1740]에 동래도호부 관할의 사천면 상단주례리가 기록되어 있고, 1780년(정조 4)에 사천면 상단이 사상면이 되며 동래부 사상면 주례리가 되었다. 1914년 일제의 행정 구역 개편으로 경상남도 동래군 사상면 주례리가 되었다.

1963년 부산직할시에 편입되며 부산진구 사상출장소 주례동이 되었다. 1975년 부산진구의 구포출장소와 통합하여 시 직할 북부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78년 북구 주례동이 되었으며, 1979년 행정적으로 주례 1동이 되었다. 1995년 부산직할시가 부산광역시로 승격하면서 북구에서 분리되어 부산광역시 사상구 주례동 소당나래 마을이 되었다.

[자연 환경]

소당나래 마을 북쪽으로 백양산, 남쪽으로 엄광산이 있다. 이 산들이 만나는 산 아래 마을이다. 멀리는 서쪽으로 낙동강이 흐른다.

[현황]

소당나래 마을사상구 주례 1동에 있던 자연 마을이다. 지금의 주례 교차로를 중심으로 부산은행 사상지점 북쪽 언덕배기에 있었다. 도시화가 진행되며 주택지와 부산세관 사상출장소 등이 들어서 있다. 1900년대까지만 해도 소당 나래 마을 서쪽의 학장천과 구덕천이 합류하는 곳에 사목포가 있었다. 이 포구를 통해서 주례 목장에서 방목하는 말을 싣고 들어오는 배들이 내왕하였다고 전해진다. 사목포는 지금의 주례 럭키 아파트 아래와 부산은행 사상지점 주례 삼거리 주위 일대에 있었다. 그렇게 보면 과거에는 이 지역 대부분이 샛강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주민들의 주업은 농업이었지만 일부는 어업에 종사하기도 하였다. 도시가 개발되기 이전에는 주례 강선대가 있었고 여기에 당산이 만들어져 있었다고 한다. 제사는 매년 12월 14일에 지냈는데, 이날 주례 마을 수호신인 산신령이 이곳에 하강하여 강물에 목욕하며 쉬어 갔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