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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리교 부산분교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0848
한자 神理敎釜山分敎會
영어의미역 Busan Branch Church of Siligyo
분야 종교/신종교,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중구 광복동 3가 11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배병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종교 시설
설립 시기/일시 1928년 7월 23일연표보기 - 설립
해체 시기/일시 1945년 8월 15일 이후연표보기 - 해체
최초 설립지 신리교 부산분교회 - 부산광역시 중구 광복동 3가 11[구 부산부 변천정 3정목 11]지도보기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광역시 중구 광복동에 있었던 신리교 소속 교당.

[설립 목적]

일본 바쿠후[幕府] 말기부터 출현하기 시작한 습합 신도, 즉 ‘신종교(新宗敎)’는 봉건 체제 붕괴에 따른 사회 혼란과 근대화 프로젝트의 부작용 등을 파고들어 신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음으로써 단기간에 발전을 이루었다. 신리교(神理敎) 역시 그 중 하나로, 1880년 후쿠오카현[福岡縣] 출신의 사노 쯔네히코[佐野經彦]가 무부신도(巫部神道)를 모태로 창시하였다. 제신은 『고사기(古事記)』에 나오는 천지어중주신(天之御中主神)과 천조대신(天照大臣) 등 18주신(柱神)을 봉재주신(奉齋主神)으로 하고 일상적으로는 그 신들을 천재제신(天在諸神)으로 총칭하였다. 1882년 일본 정부 포고령에 따라 국가신도(國家神道)에서 분리된 13개 교파 신도(敎派神道) 중 하나가 되었으며, 조선 개항 이후 일본의 타 신종교와 함께 일제의 비호를 받으며 식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조선에 진출하여 그 교세를 확장하고자 하였다.

[변천]

신리교 부산분교회(神理敎釜山分敎會)는 1928년 7월 23일 부산부 변천정 3정목 11번지[현재의 부산광역시 중구 광복동 3가]에 설립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종교 의례와 포교가 그 주된 활동이었으며, 봄과 가을에 대제(大祭)를 개최하였다. 부산부의 신도 수 또는 신도 호수 조사에 따르면 1932년·1933년 일본인 신도 호수 345호, 1934년 일본인 신도 호수 387호와 조선인 신도 호수 10호였다. 그리고 1936년에는 일본인 신도 수 345명과 조선인 신도 수 47명이었다. 이를 통해 주로 일본인을 대상으로 종교 활동이 이루어졌으며, 비록 소수이기는 하나 조선인 대상으로도 일정한 교세의 확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현황]

신리교를 포함한 일본의 신종교는 해방과 동시에 한반도에서 철수하여, 그 명맥이 끊어졌다. 신리교 부산분교회가 위치했던 부산광역시 중구 광복동 3가 11번지 일대는 현재 상가로 변모하여 일제 강점기 포교소의 흔적은 찾아 볼 수 없다.

[의의와 평가]

메이지기 이래 신리교 등 일본의 신종교는 천황제 근대 국가를 지지했고, 본국을 넘어 식민지에서까지 통합 이데올로기로 활용되었다. 이들에 대한 현황 파악을 통해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의 일제의 문화적 침투의 양상을 알 수 있어, 향토사 연구에 도움이 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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