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0844 |
---|---|
한자 | 神理敎大神町敎會所 |
영어의미역 | Daesinjeong Church of Siligyo |
분야 | 종교/신종교,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서구 대신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배병욱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광역시 서구 대신동에 있었던 신리교 소속 교당.
[설립 목적]
일본 바쿠후[幕府] 말기부터 출현하기 시작한 습합 신도, 즉 ‘신종교(新宗敎)’는 봉건 체제 붕괴에 따른 사회 혼란과 근대화 프로젝트의 부작용 등을 파고들어 신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음으로써 단기간에 발전을 이루었다. 신리교(神理敎) 역시 그 중 하나로, 1880년 후쿠오카현[福岡縣] 출신의 사노 쯔네히코[佐野經彦]가 무부신도(巫部神道)를 모태로 창시하였다. 제신은 『고사기(古事記)』에 나오는 천지어중주신(天之御中主神)과 천조대신(天照大臣) 등 18주신(柱神)을 봉재주신(奉齋主神)으로 하고 일상적으로는 그 신들을 천재제신(天在諸神)으로 총칭하였다. 1882년 일본 정부 포고령에 따라 국가신도(國家神道)에서 분리된 13개 교파 신도(敎派神道) 중 하나가 되었으며, 조선 개항 이후 일본의 타 신종교와 함께 일제의 비호를 받으며 식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조선에 진출하여 그 교세를 확장하고자 하였다.
[변천]
신리교 대신정교회소(神理敎大新町敎會所)는 1914년 6월 부산부 대신정[현재의 부산광역시 서구 대신동]에서 설립되었다. 교회소 폐지의 시점은 명확하지 않은데, 1931년 이후 기록에서 사라진 것을 보아, 1932년 전후로 짐작된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종교 의례와 포교가 그 주된 활동이었으며, 봄과 가을에 대제(大祭)를 개최하였다. 부산부의 신도 호수 조사에 따르면, 1927~1930년의 경우 일본인 신도 호수 300호였고, 1931년은 일본인 신도 호수 300호와 조선인 신도 호수 30호였다. 이를 통해 주로 일본인을 대상으로 종교 활동이 이루어졌으며, 비록 소수이기는 하나 조선인 대상으로도 일정한 교세의 확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현황]
신리교를 포함한 일본의 신종교는 해방과 동시에 한반도에서 철수하여, 그 명맥이 끊어졌다. 신리교 대신정교회소의 소재지였던 현재의 부산광역시 서구 동대신동·서대신동 일대에서도 일제 강점기 신리교 교회소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다.
[의의와 평가]
메이지기 이래 신리교 등 일본의 신종교는 천황제 근대 국가를 지지했고, 본국을 넘어 식민지에서까지 통합 이데올로기로 활용되었다. 이들에 대한 현황 파악을 통해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의 일제의 문화적 침투의 양상을 알 수 있어, 향토사 연구에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