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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0633
영어의미역 Gukmaeseom Village
이칭/별칭 국맥섬[國麥島] 마을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부산광역시 사상구 감전동 국매섬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전영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자연 마을
변천 시기/일시 1914년 - 경상남도 동래군 사상면 감전리
변천 시기/일시 1963년 - 경상남도 동래군 사상면 감전리에서 부산직할시 부산진구 감전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75년 - 부산직할시 부산진구 감전동에서 부산직할시 북부출장소 감전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78년 - 부산직할시 북부출장소 감전동에서 부산직할시 북구 감전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95년 - 부산직할시 북구 감전에서 부산광역시 사상구 감전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2008년 - 행정동인 감전 1동과 감전 2동이 감전동으로 통합
자연 마을 국매섬 마을 - 부산광역시 사상구 감전동 국매섬 마을

[정의]

부산광역시 사상구 감전동에 있었던 자연 마을.

[명칭 유래]

국매섬은 감전동 서쪽 강변에 있던 소요저도와 유도에 이어진 섬으로서, 오복섬이라고도 하였다. 일제 강점기 이곳에 목장을 설치하였다고 하여 군마도(軍馬島), 국마도(國馬島)로도 불렀다고 하지만 근거가 확실하지는 않다.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이 이곳을 개간하여 본격적으로 밀을 재배하며 보리농사도 함께 지은 곳이라고 국맥섬[國麥島]으로 부르다가 국매섬이 되었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국매섬은 낙동강 하구 지역으로, 상류에서 흘러 내려온 토사가 쌓여서 생긴 퇴적 섬이다. 조선 시대에는 양산군 좌이면 유두리에 속하였다. 일본이 1894년(고종 31) 청일 전쟁에 대비해 부산을 병참 기지로 사용하였는데, 일설에는 이곳 국매섬에 일본군 군마를 임시로 사육하는 목장을 설치하였다고도 한다. 1910년대만 해도 이곳에서는 보리농사를 많이 지었으며, 한때는 일본 사람들이 정착하여 밀농사를 짓기도 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동래군 사상면 감전리가 되었다. 1930년대 낙동강 홍수를 예방하려고 강 양안에 제방을 쌓을 때 유도와 함께 섬 일부가 사라지며 하천 수역이 되었다.

1963년 부산직할시에 편입되고 부산진구 사상출장소가 설치되면서 그 관할이 되었다. 1975년 부산진구의 구포출장소와 통합하여 시 직할 북부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78년 북구 감전동이 되었다. 1979년 감전동의 행정동이 감전 1동, 감정 2동으로 분동되었으며, 1982년에는 감전동 일부를 엄궁동으로 편입하는 법정동 경계 조정이 있었다. 1995년 부산직할시가 부산광역시로 승격하면서 사상구가 신설되어 부산광역시 사상구 감전동 국매섬 마을이 되었다. 2008년 행정동인 감전 1동, 감정 2동감전동으로 통합되어 현재에 이른다.

[자연 환경]

국매섬 마을이 있던 자리는 현재 삼락 수로와 감전 수로가 조성되어 낙동강으로 유입되며, 나머지는 낙동강 둔치로 변했다. 서쪽에는 맥도 나루터가 있었는데, 1970년대 낙동강 제방을 따라 부산~진해 간 국도 제2호선이 포장되면서 자연적으로 폐쇄되었다.

[현황]

국매섬 마을감전동에 있던 자연 마을이었다. 현재 삼락 체육공원과 삼락 생태 공원이 들어서 있어 마을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삼락 생태 공원은 창포 단지, 물억새 군락지, 수생 식물원, 갈대 체험장, 논 체험장, 야생 화원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체육공원에는 남녀노소 누구라도 즐길 수 있는 인라인 스케이트장을 비롯해 테니스장이 세 곳, 농구장이 두 곳, 배구장과 족구장이 각각 한 곳씩 들어서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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