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06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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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校里- |
영어의미역 | Gyori Village |
분야 | 지리/인문 지리,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동 교리 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정형 |
성격 | 자연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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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832년 - 경상도 동래도호부 읍내면 교동리에 편입 |
변천 시기/일시 | 1914년 - 경상도 동래도호부 읍내면 교동리에서 경상남도 동래군 동래면 교동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42년 10월 - 경상남도 동래군 동래면 교동에서 부산부 동래출장소 명륜정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49년 8월 - 부산부 동래출장소 명륜정에서 부산시 동래출장소 명륜동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57년 1월 - 부산시 동래출장소 명륜동에서 부산시 동래구 명륜동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63년 1월 - 부산시 동래구 명륜동에서 부산직할시 동래구 명륜동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95년 1월 - 부산직할시 동래구 명륜동에서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동으로 개편 |
현 소재지 | 교리 마을 -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동 교리 마을 |
[정의]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동에 있었던 자연 마을.
[명칭 유래]
동래 향교(東萊鄕校) 주변에 있는 마을이라고 하여 교리(校里)라고 불렀다. 동래 향교는 1392년 조선의 건국과 함께 국가의 교육 진흥책에 따라 각 지방에 향교를 세울 때 지금의 동래고등학교 주변에 처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임진왜란 때 동래읍성 함락과 함께 불탔으나 1605년(선조 38)에 다시 세워진 후 여러 차례 옮겨졌다가 1813년(순조 13) 현재의 자리인 명륜초등학교 옆으로 옮겨졌는데, 이 때문에 마을 이름을 교동리, 교동, 교리 등으로 불리게 되었다.
[형성 및 변천]
교리 마을은 1813년 동래 향교가 지금의 자리로 옮겨 오면서 처음 생긴 마을인지, 아니면 그 이전부터 다른 이름의 자연 마을로 있다가 향교가 옮겨지면서 마을 이름이 바뀐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동래부읍지(東萊府邑誌)』[1832] 방리조(坊里條)를 보면 읍내면에 교동리가 있고, 『경상남도 동래군 가호안』[1904]의 읍내면에도 42가구가 사는 교동이 있었음을 감안하면, 이 마을은 200년쯤 혹은 그 이상의 역사를 가진 마을임에 틀림없다.
1914년 3월 행정 구역 개편 때 동래군 동래면 교동에 속하였고, 1942년 10월 부산부 동래출장소 명륜정(明倫町) 관할이 되었다. 1949년 8월 부산시 동래출장소 명륜동에 속하였으며, 1957년 1월에는 부산시 동래구 명륜동, 1963년 1월 부산직할시 동래구 명륜동, 1995년 1월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동에 편입되었다.
교리 마을은 동래읍성 서문을 나와 지금의 금정구, 양산, 서울로 가는 길이 지나고 있어 일찍부터 교통이 발달하였다. 1900년대 초기부터 형성되어 전국적으로 이름난 동래 우시장(東萊牛市場)이 있었고, 6·25 전쟁 이후에는 많은 피난민들로 인구가 급증하여 주택 밀집 지역으로 바뀌면서 자연 마을이 사라졌다. 동래 향교의 동쪽과 북쪽은 2009년~2010년 주택 등이 모두 헐리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변신하고 있다.
[자연 환경]
옛 교리 마을 동북쪽으로 마안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뻗은 능선의 끝자락과 연결되고 있고, 남서쪽으로는 평지의 주택 밀집 지역과 연결된다.
[현황]
교리 마을은 지금의 동래 향교 동쪽과 북쪽 일원으로 주거지가 들어서며 옛 흔적이 사라졌다. 현재는 명륜 3구역 주택 재개발 정비 사업에 따라 주택 등이 모두 헐리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세워지고 있다. 이 지역에는 동래우체국, 동래경찰서 내성지구대 등 공공 시설물과, 교리 마을 이름답게 명륜초등학교 외에 각종 학원 등 교육 시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