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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극장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0562
한자 中央劇場
영어의미역 Joongang Cinema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역사/근현대
유형 지명/시설
지역 부산광역시 동구 중앙대로 233[초량동 207-1]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최용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극장
준공 시기/일시 1930년연표보기 - 준공
개관|개장 시기/일시 1930년 7월 22일연표보기 - 개관
개칭 시기/일시 1936년 4월연표보기 - 중앙 극장에서 대생좌로 개칭
개칭 시기/일시 1947년 1월연표보기 - 대생좌에서 대생 극장으로 개칭
개칭 시기/일시 1948년연표보기 - 대생 극장에서 중앙 극장으로 개칭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0년 10월 23일연표보기 - 폐관
최초 설립지 중앙 극장 - 부산광역시 동구 중앙대로 233[초량동 207-1]지도보기

[정의]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에 있던 부산 지역의 대표적인 영화관.

[건립 경위]

중앙 극장(中央劇場)은 1930년 7월 22일 지금의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에 개관하였다.

[변천]

개관 이후에 행관(幸館)이 화재로 소실되고, 창선동소화관(昭和館), 남포동부산 극장(釜山劇場)이 각각 개관하여 남포동 극장가를 이루었다. 개관 초기에는 다다미 바닥의 연극 및 영화 전용관으로 출발하였다. 무성 영화가 아닌 발성 영화관 시스템을 가진 영화관이었다. 중앙 극장은 1936년 4월 대생좌로 개칭되었다. 8·15 광복 이후인 1947년 1월 일본식 영화관명을 버리고 새로운 이름인 대생 극장으로 개칭되었다. 1948년 다시 본래의 극장명인 중앙 극장으로 개칭하여 운영되다가 1980년 10월 23일 폐관되었다. 현재 이 자리에는 하나은행이 들어서 있다.

[구성]

193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부산은 내선일체(內鮮一體)의 식민 정책과 침략 전쟁의 교두보로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시기였기에 8·15 광복까지 친일 영화가 매우 빈번하게 상영되었다. 예를 들어 1932년 3월 15일에는 『조선 일보』 독자 우대 영화 「방아 타령」, 1935년 9월 16일에 「윤락의 거리」, 그리고 전쟁 동맹국 독일과 합작한 노무라 히로마사 감독의 「국민의 맹세」[1941년 11월 25일] 등의 영화가 상영되었다. 한편 1930년부터 1944년까지 조선 영화는 총 55편이 110회에 걸쳐 상영되었다. 부산의 극장 가운데 중앙 극장[대생좌]이 54편을 상영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상영된 조선 영화는 1920년대 제작된 「약혼」, 「낙양의 길」, 「사나이」, 「세 동무」, 「낙화유수」, 「나의 친구여」를 포함하여 이미 오래전 개봉된 영화가 대부분이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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