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03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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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中央日報 |
영어의미역 | The Joong-Ang Ilbo |
분야 | 문화·교육/언론·출판 |
유형 | 문헌/연속 간행물 |
지역 |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로[대청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은진 |
[정의]
6·25 전쟁 시기 부산 지역에서 창간된 일간지.
[창간 경위]
1945년 11월 28일 창간된 『부산 매일 신문』이 『매일 신문』으로 제호를 변경하고 1950년 7월 10일 자진 폐간하자 북한 폭로 잡지 『이북 통신』을 발행하던 이북(李北)이 이 신문사의 시설을 인수하여 『중앙 일보』를 창간하였다. 그 시기는 1952년 6월 5일이며 장소는 부산시 대청동 3가 8번지[현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동]이다. 창간사에 “자유 언론의 봉화로서 민주 정치의 지침이 되고 민족 문화의 선구자가 되고자 한다.”고 밝혔다.
[형태]
대판[39.1×54.5㎝] 두 면으로 발행되었다.
[변천과 현황]
창간 당시 발행 겸 편집 인쇄인은 이북, 사빈(社賓)[객원 기자 혹은 고문]은 이건혁, 편집국장은 강영수였다. 구성과 내용 등 자세한 정보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1953년 5월 한국 최초 미인 선발 대회인 제1회 여성 경염 대회(競艶大會)를 개최하였다. 휴전 후 서울 중구 을지로 1가[현 서울특별시 중구 태평로]로 사옥을 옮겨 발행되다가 1956년 1월 자유당 이기붕 계의 공진환에게 판권이 넘어갔다. 이후 여당계 신문으로 운영되었다.
1957년 1월 1일부터 제호가 『세계 일보』로 바뀌었다. 4·19 혁명 이후 1960년 7월 9일 『민국 일보』로 제호를 바꾸고 혁신을 꾀하였다. 여당 성향에서 벗어나 중립적 논조를 유지하고자 하였으나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1962년 7월 13일 무기 휴간되었다.
[의의와 평가]
6.25 전쟁 시 기업과 언론사들이 부산 지역으로 몰리면서 창간된 신문이다. 한국 신문 최초로 오늘날의 객원 기자나 고문에 해당하는 사빈(社賓) 제도를 도입하여 이건혁이 역임하였다. 이건혁은 1901년 서울 출생으로 일본 와세다대학과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조선 일보』 편집국장, 『대동 신문』 이사 겸 편집국장, 『서울 신문』 취체역 겸 편집국장 등을 지냈고 1949년 공보처 공보국장을 지낸 언론계 중진급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