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부산문화방송 마산 의거 보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0327
한자 釜山文化放送馬山義擧報道
영어의미역 Busan MBC’s Broadcasting of Masan Uprising
분야 역사/근현대,문화·교육/언론·출판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부산광역시 동구 중앙대로 69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은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방송 보도 사건
관련인물/단체 부산문화방송
발생|시작 시기/일시 1960년 3월 15일 - 3·15 마산 의거 발발
종결 시기/일시 1960년 4월 26일 - 이승만 대통령 하야
발단 시기/일시 1960년 3월 15일 - 3·15 부정 선거 실시
전개 시기/일시 1960년 4월 11일 - 부산문화방송에서 김주열 사체 발견 관련 보도
전개 시기/일시 1960년 4월 18일 - 부산문화방송에서 고려대학교 시위 상황과 정치 깡패에 의한 피습 사건 보도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60년 6월 19일 - 부산문화방송 ‘학생 의거의 노래’ 공모
발생|시작 장소 부산문화방송 - 부산광역시 동구 중앙대로 69지도보기

[정의]

부산문화방송에서 3·15 마산 의거 현장을 보도한 사건.

[역사적 배경]

부산문화방송은 1960년 3월 15일 선거일을 맞아 주요 개표소에 중계 요원을 파견하고 보다 효율적이고 정확한 개표 방송을 위해 자매 회사인 부산일보에도 중계 시설을 설치하여 일종의 다원 방송을 시도하였다. 이승만 대통령과 자유당은 선거 결과를 조작하는 대규모 부정행위를 저질렀고, 선거 당일 저녁 마산 시민들과 학생들이 부정 선거를 규탄하며 재선거를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경과]

당시 마산 지역에서는 박재영·이상철·조재필 기자가 취재를 맡고 있었는데, 시위대를 뒤따르며 무장한 군인들이 비무장한 시민들을 향해 발포하는 소리가 담긴 현장 상황을 녹음하였다. 부산일보 사장 김지태는 부산문화방송 라디오 중계차를 부산일보사 앞에 대고 부산일보 사장실에서 마산 뉴스를 보도하도록 했다. 경찰은 방송이 부산문화방송 사옥에서 진행되는 것으로 알고 부산문화방송 사옥으로 가 방송 중단을 요구하였다. 그 사이 3·15 마산 의거의 현장 녹음 내용을 일본 NHK가 전달받아, 9시 뉴스를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1960년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 최루탄이 눈에 박힌 김주열의 사체가 발견되었고, 현지에 있던 기자가 이를 전해 듣고 마산도립병원으로 달려가 인양된 시신이 김주열임을 확인하였다. 이 상황은 4월 11일 11시 45분에 부산문화방송의 전파를 탔는데, 이는 언론사 중 가장 앞선 특종 보도였다. 김주열 시신 인양을 계기로 마산에서는 더욱 격렬한 시위가 일어났으며, 부산문화방송은 김주열 어머니의 육성 녹음을 방송하여 국민들의 심금을 울리는 등 지속적으로 보도하였다.

3·15 마산 의거가 전국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4월 18일 서울에서는 고려대학교 학생이 중심이 된 격렬한 시위가 일어났다. 부산문화방송은 관할 중부경찰서장과 부산지검 부장 검사가 시위 상황을 일절 보도하지 말라고 협박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4월 18일 밤 9시 『뉴스 브릿지』를 통해 고려대학교 시위 상황과 정치 깡패에 의한 피습 사건을 보도하였다. 보도가 나간 후 중부경찰서장이 방송을 진행하던 최광민 PD에게 권총을 휘두르며 방송을 중단하라고 협박했으며, 이 과정과 항의하는 PD의 육성이 그대로 방송에 나가면서 시민들의 분노를 더욱 자극하였다.

[결과]

부산문화방송은 1960년 6월 19일 ‘학생 의거의 노래’를 공모하여 재정하고, 7월 29일에 실시된 총선거 투개표 상황을 최초로 중계 방송하는 등 3·15 마산 의거와 4·19 혁명 정신이 올바르게 계승될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이들 보도를 계기로 청취율이 크게 높아지면서 새로운 발전의 계기로 삼으려는 대응 방안이 다각도로 시행되었다.

1960년 4월 8일 정기 주주 총회에서 김지태 부산일보 사장을 취체역(取締役)[이사(理事)의 이전 말] 회장으로, 김종한을 취체역 전무로 선임했으며, 3,811만 환의 예산을 들여 출력을 10㎾로 증강하고 대구진주에 네트국 건설 추진을 의결하였다. 이후 방송 내용에 있어서는 정치적·사회적 격변기를 거치며 지나치게 정치 지향화된 시민 의식의 균형을 잡기 위해 연예·오락·교양 프로그램을 강화하였다.

[의의와 평가]

부산문화방송이 3·15 마산 의거를 집중적으로 보도함으로써 시민들로부터 신뢰를 구축하는 계기가 되었고, 청취율 상승과 사세 확장의 성과로 이어졌다. 또한 일반 국민들에게 방송의 공정성과 속보성이 얼마나 중요하며 파급 효과가 얼마나 큰지를 증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